오십 중반에야 알게 된 기쁨의 정체 (78)

by Jace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은 이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허전했다.


직함은 올라갔고,

책임질 조직이 있었고,

가족을 지킬 만큼의 기반도 갖추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불 꺼진 거실에 혼자 앉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무엇으로 기뻐하고 있는가.


젊은 날의 나는 속도를 믿었다.

성과가 곧 존재의 증명이었다.

연봉, 직함, 실적.

숫자는 분명했고,

박수는 즉각적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쁨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정상에 오르면 또 다른 정상이 보였다.

환희는 곧 압박으로 바뀌었다.


기쁨은 늘 “다음”에 있었다.


오십 중반을 넘기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지금”을 보기 시작했다.


아침 공기가 다르게 느껴진다.

계절이 코끝에서 먼저 바뀐다.

비 온 뒤의 흙냄새.

엘리베이터 안을 스치는 은은한 향수.

집에 들어설 때 풍기는 익숙한 냄새.


향기는 말없이 긴장을 풀어준다.

설명은 없지만, 위로는 분명하다.


하늘은 더 높아 보이고

빗소리는 생각을 가라앉힌다.

대중음악도 밝은 노래와

클래식의 잔잔한 선율이 귀에 오래 남는다.


따뜻한 이불의 감촉.

반가운 사람과 악수할 때 전해지는 체온.

다 큰 자식의 어깨를 두드릴 때 느껴지는 듬직함.

이렇게 나의 피부는 기분 좋았던 순간을

촉감으로 기억한다.


맛도 달라졌다.

무엇을 먹느냐보다

누구와 먹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하루를 무사히 넘긴 저녁 식탁은

어떤 성취보다 깊은 안도감을 준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이미 충분히 기뻐할 수 있는 존재였다.


다만,

바빴을 뿐이다.


가장으로 산다는 것은

감정보다 책임이 앞서는 일이었다.

흔들리지 않는 척하는 시간이 길었다.

버티는 것이 역할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자식이 무심히 건넨 한마디가

모든 성취를 밀어냈다.


“아버지 덕분이에요.”


그 짧은 문장이

젊은 날의 어떤 승진보다 깊게 남았다.


오랜 친구와의 잔잔한 교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는 공기.

이해받는다는 감각은

성과보다 오래간다.


그리고 사랑.


젊은 날의 사랑이 불꽃이었다면

지금의 사랑은 온기다.

요란하지 않지만 오래간다.

오랫동안 곁을 지키는 반려자와

어쩌다 나누는 육체적 교감은

욕망을 넘어선다.

몸이 긴장을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잠시 역할을 벗는다.

절정의 환희는

쾌락이라기보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안심에 가깝다.


이제야 안다.


기쁨은 높은 곳에 있지 않았다.

성과 그래프의 꼭대기에도 없었다.


비 내리는 날의 냄새 속에,

하루를 마친 식탁 위에,

서로의 체온이 남아 있는 거실에 있었다.


성공은 나를 증명했지만

이 작은 순간들은 나를 사람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기쁨을 누리게 된다.


성공을 향해 달려온 시간보다

그 사실을 깨닫는 데

나는 더 오래 걸렸다.


혹시 당신도,

성공은 이루었지만

기쁨을 잠시 미뤄두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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