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고향에 가지 못한 날, 한강을 걸으며 (77)

— ‘평균’이라는 단어의 어색함을 생각했다

by Jace

명절인데, 한강이 이렇게 조용해도 되나 싶었다.


도시는 불빛으로 가득한데

사람은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나는 오늘, 고향에 내려가지 못했다.



설 연휴 저녁, 한강공원을 걸었다.

러닝을 하는 사람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평소보다 적었다.

겨울 공기가 강 위로 넓게 번져 있었다.


아파트 후문을 나와 잠원나들목을 지나 한남대교를 건넜다.

동호대교 직전에서 현대고 방향으로 빠져나와 가로수길을 거쳐 신사역 방향으로 돌아오는 익숙한 길.


같은 길인데

명절 저녁의 공기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한강공원 농구 코트에는 몇몇 젊은이들이 공을 튀기고

있었다.

명절이라는 단어와는 상관없는 표정으로,

자기들만의 속도로.



이번 명절에는 부산 본가에 내려가지 못했다.

어머니께서 혼자 계신다.


전화를 드리면 늘 같은 말씀을 하신다.


“괜찮다. 내려오지 마라. 너도 바쁘잖아.”


그리고 꼭 덧붙이신다.

“밥은 먹었나?”


그 말이

정말 괜찮다는 뜻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전화를 끊고 나면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꺼진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게 된다.


어머니 세대에게 명절은 ‘당연히 함께하는 날’이었다.

우리 세대에게 명절은 ‘되도록 지켜야 하는 날’이었고,

요즘 세대에게 명절은 ‘선택 가능한 날’이 된 것 같다.



내가 스물일곱이던 무렵을 떠올려 본다.


남자들은 군대를 다녀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았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그 나이쯤에 결혼을 했다.


나는 대학교 2학년 때 만난 첫사랑과 3년 넘게 사귀다

헤어졌다.

그 후유증이 길어져 서른하나에야 결혼을 했다.


그 당시 여자들은 취업 여부와 별개로 대학 졸업 전후에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혼을 하면 아이를 갖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선택이라기보다 흐름이었다.


그때는 평균이 있었다.

그리고 그 평균은 꽤 단단했다.


조금 늦으면 조급했고,

조금 빠르면 의아한 시선을 받았다.


기준은 분명했고

거기서 벗어나면 설명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30대가 넘어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이 되었고,

빠르면 20대 초·중반에 결혼하는 사람도 있다.


연상녀·연하남 커플도 자연스럽고,

무자녀 부부도 늘고 있다.

1인 가구는 이제 특별하지도 않다.


결혼도, 출산도, 명절 귀향도

모두 선택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평균’이라는 말이 어딘가 어색해졌다.


남들보다 늦다고 불안해할 이유도,

남들보다 다르다고 설명해야 할 의무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요즘은 누군가의 삶을 쉽게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왜 아직 결혼 안 했니?”

“왜 아이는 안 낳니?”

“왜 명절에 안 내려가니?”


그 질문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각자의 삶이 너무 다르고,

각자가 감당하는 사정이 너무 다양하기 때문이다.



한강을 걷다가 문득 깨달았다.


어머니 세대는 정해진 길 위에서 최선을 다해 사셨고,

우리 세대는 그 길을 따라오며 안정이라 믿었고,

지금 세대는 그 길을 선택하거나 거부할 자유를 갖고 있다.


시대는 조금씩

‘정답’에서 ‘선택’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래도 이상하게,

명절 저녁의 강바람을 맞고 있으면

결국 떠오르는 건 어머니 얼굴이다.


각자의 삶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고향으로 향하는 방향을 알고 있다.


아마 우리는

전통과 변화의 사이에서

조용히 균형을 배우는 세대일지도 모른다.


오늘 한강은 한산했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는

각자의 선택으로 흩어진 삶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가운데 서서

어머니를 생각했다.


명절은 꼭 고향에 가야만 완성되는 걸까.

아니면, 마음이 잠시 그곳을 향하면 충분한 걸까.


올해 당신의 명절은

어디에 머물러 있습니까.


고향입니까,

집입니까,

아니면

마음속 어떤 사람 곁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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