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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동산 이야기는
사람을 둘로 가른다.
집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올라서 웃는 사람과 올라서 더 불안한 사람.
서울에 전용 25평 아파트 한 채.
네 식구.
부부 공동명의.
그리고 아직 갚아야 할 수억 원의 대출.
직장 생활 32년,
오십 대 가장의 현재 좌표다.
겉으로 보면 나는 ‘집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집을 가진 뒤에도 마음은 자주 흔들렸다.
집값이 가장 빠르게 오르던 시기,
나는 계산기를 붙들고 살았다.
금리가 0.1%만 움직여도
상환액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몇 번이고 확인했다.
대출 승인이 났던 날,
기쁨보다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이것이었다.
그때 아내는
예적금도 깨고 보험도 정리하자고 했다.
그래도 집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나는 망설였고, 아내는 결단했다.
그 결단 덕분에
우리는 늦게나마 오십 대에
‘내 집’을 장만하게 됐다.
그리고 집값은 올랐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도 자산이 늘었잖아요.”
그 말이 틀린 건 아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삶이 가벼워졌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투자가 아니라 실거주니까.
우리 집이 오른 만큼,
더 비싼 집들은 더 멀리 달아났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이사를 고민해 보면
현실은 여전히 벽처럼 서 있다.
숫자는 커졌지만
선택지는 넓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묻고 싶다.
지금의 부동산 시장은
누구를 위한 구조인가.
실거주 집 한 채 있는 사람도 불안하고,
집이 없는 사람은 더 절망한다.
그 사이에서
정책은 자주 바뀌고,
기준은 흔들린다.
어제는 장려하던 것이
오늘은 규제가 되고,
오늘의 선택이
내일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투기로 번 과도한 이익은
당연히 세금으로 더 환수해야 한다.
공정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평범한 가장이
가족의 미래를 걸고 한 선택까지
정치의 파도에 따라 평가받는 사회라면
그건 정상이라고 말하기 어렵지 않을까.
나는 집값이 더 이상 오르길 바라지 않는다.
대신 바라는 것이 있다.
적어도 예측 가능했으면 좋겠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기준이었으면 좋겠다.
한 번 정해진 방향이라면 오래 유지됐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는
집을 두고 서로를 원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집은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하루를 버티고 돌아오는 안식처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 집을 두고
서로를 의심하게 되었을까.
나는 오늘도
대출원리금 자동이체 날짜를 확인하고
아이들 방문을 닫으며 생각한다.
내가 가진 이 25평이
누군가의 분노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편안한 쉼터였으면 좋겠다고.
집이 자산이기 전에
삶의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집을 가진 사람도,
가지지 못한 사람도
서로를 적으로 보지 않아도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이 글은 특정 정책을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다.
실거주 집 한 채 대출을 갚아가는 한 가장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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