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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주 Mar 08. 2019

엄마의 전성기

얼마전 우리집 싱크대를 바꿨다.


공사하시는 분이 이전 것을 보고선,

사람들이 다 이렇게 쓰다간, 저희 가게 망하겠어요

할 정도니 무척이나 오래쓰긴 썼나보다.


나는 신이 났다.

밤마다 오래된 싱크대 틈새로 계속 출몰하는 바퀴벌레가 너무 싫었고,

떨어질 듯 떨어지지않는 아슬아슬한 문짝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엄마는 토요일날 온 가족을 붙잡아놓고

(온 가족이라 해봤자 일을 쉬고있는 아빠, 그리고 아직 시집안간 나)

싱크대 속에 있는 그릇 정리를 시작했다.


오래되고 더러워져서

버릴건 버리고,

더 쓸건 놔두고.

거침없는 나의 분별작업(?)이 시작되었다.

빨리 끝내고 쉬고싶은 나의 마음과 맞물려

일은 착착 진행되었다.


엄마는 한번도 안쓴 새 그릇들을 발견하면,

날 주기 위해 상자에 담으셨다.

너 시집가면 이건 이제 안사도 되겠다 하시며.


한참 정리를 하는데

아주 오래된 도시락 통 하나가 나왔다.


양념장이 조금 묻어서 굳어있고,

찌든 때로 지저분해 보이는 도시락통은

언니랑 내가 예전에 학교다닐때 썼던 것이었다.


엄마는 한참동안 그 도시락 통을 닦으며,

만지작거리셨다.


엄마 뭐해요,내가 물으니

엄마가

이 통은 못버리겠네

고 하신다.


저 더러운 그릇을 안버리고 뭐하나.

의아해하며 그 통을 다시 보는데

내 기억속에 문득

밥과 반찬을 그 통에 담는 엄마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는 우리엄마가 50대 혹은 40대 후반이었겠구나.


그리 생각하며

주위를 휘 둘러보는데,

버려지기 위해 쌓여있는 그릇들이

딱 그렇게 말했다.


'그래. 우리가 그때 전성기였다.

지금은 이렇게 빛을 잃었지만.'


이 그릇들이 전성기가 있었구나.

이 그릇들도 처음엔

설거지로 자주 세수도 하고,

엄마 요리를 품어내며,

매일을 분주하게 살았겠지.


그때 우리 엄마도 전성기였구나.


엄마의 전성기는


이 그릇들이 그랬던 것처럼

매일 아침이 분주했다.

학교에 일찍 등교하는 삼남매를 위해

새벽에 일어나 밥을 하고 찌개를 끓이고

집에 돌아와서는

과일을 깎고,

푸짐한 저녁 밥상을 차린 우리 엄마.


엄마의 치열했던 전성기.

그 밥상에 올라왔던, 엄마가 직접 썼던 그 그릇들.

빛을 잃었지만

이 그릇들이

엄마 인생 전쟁터의 무기이자 방패이자 친구였다.


지금은

그런 분주한 아침은 많이 없다.

이제 집에없는 결혼한 언니와 축구선수 동생,

일을 쉬는 아빠,

캠퍼스로 출근하는 나를 맞이하는

매일 아침은

한가하고 여유롭다.


엄마는

그 전성기가 그리웠던 걸까.

누군가를 위해 뜨겁게 살았던

매일의 바쁨과 치열함이 그리웠던 걸까.

자꾸 그릇을 닦고 만지신다.


예전에 짧은 만화 하나가 있었다.

제목이 모래시계인데

모래가 많은 윗쪽이 엄마,

밑에쪽엔 아기가 있었다.

엄마쪽 모래는 처음엔 되게 많았는데

밑에쪽 아이에게 흐르면 흐를수록, 아이가 자라면 자랄수록

점점 줄어들었다.


엄마의 모래를 흘려받으며 자란 아이는

어느새 혼자 걷고, 공부도 하고 어른이 되었다.

엄마 모래는 밑으로 흘려보내느라 더욱더 작아지고

결국에 엄마 모래는 끝이 나버렸다.


오래된 그릇을 닦고, 버리며

그 모래시계가 자꾸 생각나는건

나의 지나친 감수성때문인가


엄마의 전성기가 지나고,

엄마는 그 전성기를 이제 나에게 준다.

그릇들이 바뀐다.


엄마는 어제,

이제 나도 늙었나보다. 잠이 더 많아졌네

하셨다.

시린 마음 한켠을 애써 무시하며

나는, 엄마 인생은 60부터래잖아. 이제 시작이야.

하고 한껏 밝게 말한다.


자꾸 평소보다 일찍 꺼지는

엄마 방의 불빛을

나는 무시하고 싶다.


싱크대가 이제 새로 바뀌었다.

문짝도 튼튼하고

바퀴벌레도 이제 잘 안나온다.

이제 엄마의 제 2의 전성기를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해볼까.

고민중인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혹시나

최근 싱크대가 바뀌어

엄마의 전성기에 대해 고민해보셨거나

또는 60대 엄마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신 분이 있다면

나에게 작은 지혜를 나눠주시길 바란다.


모래시계가 자꾸 줄어든다.


(2016.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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