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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주 Mar 08. 2019

삶은 꽃이거나 열매인거야

31살, 애엄마의 청춘이란

어제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중학생이었다.

단조로운 쥐색 스커트에 흰색 블라우스.

졸업한지 꽤 지났지만, 이 교복은 중학교때 것이 확실하다.

꿈에서 담임선생님은 우리에게 종례시간 인사를 바꾸고싶다하셨다. 반장이 일어나서 차렷, 경례하는 구호가 아닌 색다른걸로. 반친구들은 열심히 손을들며 의견을 내었다.

나도 열정적으로 손을 들었는데, 내가 낸 구호는

반장이 차렷하면, 우리 모두가 '최선을 다하자' 라는 구호였다. 선생님이 그에대해 뭔가 피드백을 하시려던 순간

꿈에서 깨어 눈을 번쩍떴다.

최선을 다하자라는 구호. 꿈이라 그런지 말도안되는 좀 유별난 구호였지만 한때 내 삶의 좌우명이기도 했다.

지금 나에겐..?

지금? 나는 31살의 7개월 아들을 키우고있는 아기엄마.

수면바지에 늘어진 티셔츠가 이제 내 교복.

머리는 흔히들 말하는 똥머리. 아기가 잡아뜯지않게 하려면 다른 방법은 없다.

최선을 다하자? 아기를 안고 주변을 둘러보니 바닥에 흩어져있는 머리카락, 밀린 빨래들..

최선과는 멀다. 갑자기 현실의 무게가 내 가슴에 훅하니 얹혀진다.

나도 중학생이던 때가 있었지. 이 노래를 듣고싶어진다.

김필의 '청춘'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쓸쓸한 기타반주와 착 가라앉는 목소리..

아 정말 구슬프다.

아들도  분위기가 좀 이상한걸 느꼈는지 나를 멀뚱히 쳐다본다.

나는 계속 노래를 듣는다.


[가고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거야]


사람은 자신이 젊다는 것을 모른다.

누군가가 말했었지. 내가 만약 신이라면 청년의 시기를 인생의 끝에 놓으리라고.


흘러가고없는 내 청춘, 내 젊음, 자유.

서른한살은 어쩌면 젊으면 젊은 나이다.

하지만 순식간에 지나간 나의 십대, 이십대가 너무 그리워져서 헛헛한 마음을 달래기가 쉽지않다.


'청춘'이 끝나고 다음곡이 흘러나온다.

이루펀트의 화분.

아들에게 엄마가 허심탄회한 고백을 하는 가사가 나온다.


[민호야 이제 니도

다 컸으니까 말인데

가끔은 엄마도 그날

다 떠나가 도망갔으면

엄마도 엄마 인생

악 같은 거 안 쓰며

좀 더 멋지게 살 수 있지 않았겠나

..

요즘 나는 뭔가 싶을 때가 있거든

엄마도 하고 싶은 것 참 많았는데]


나도 하고싶은것들 정말 많았는데.아직도 많다.

나도 한때 글 쓰는 사람, 가르치는 사람, 상담하는 사람 되고싶었지.

하지만 일단은 당장 혼자 카페에 가서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 마시는 것부터.

그래도 이 민호엄마는 어떤 고백을 더 하는지 잠잠코 들어본다.


[사람들이 말하데

자식 위해 사는 거야 밑거름

삶은 꽃이거나 열맨거야

아니 누군가의

꽃이거나 열맨거야]


노래가, 가삿말이 내 가슴에 다시 콕 박힌다.

이미 떠난 내 청춘, 붙잡을수 없는 내 젊음의 시간들이

헛되이 흘러간게 아니라고 노래가 말해준다.

가고없는 청춘을 붙잡으려는 그 빈손 짓에 슬퍼지려할때

삶의 꽃이자 열매인, 아들의 작고 따뜻한 손을 쓸어보렴



미세먼지가 많아 환기를 잘 못시키는데도 창문너머에서 봄기운이 와락 느껴진다.

마르고 앙상한 가지마다 이제 푸릇한 새순이 돋겠군.

겨울을 견뎠구나.

아니 그 이전에 쓸쓸한 가을도 견디었구나.

나도 위로해주라.

나도 가고없는 청춘을 보낸 가을에 머무는것이 아니라

나를 밑거름삼아 아들이라는 꽃을 피워가고있거든.

누구에게 건네는 말인건지 명확하지도않은 혼잣말을 하며

배고픈 아기에게 이유식을 챙기러간다.


돌아오는 봄에는 다시 최선을 다해보자.

거기서 작고 예쁜 꽃을 피워서 부드럽게 한번 쓰다듬어보자.

우리의 삶은 누군가의 꽃이거나 열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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