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승무원 일기
입사 후 승무원이 되기 위한 초기 훈련을 받고 나면, 정식으로 훈련을 수료하기 전 OE비행을 다녀오게 된다. (OE 비행 : 모의 평가비행)
아직 훈련을 완전히 수료한 것은 아니지만 처음으로 기내에서 손님을 만나게 되는 순간이라 굉장히 떨렸었다.
나에게 여행의 가장 설레는 순간을 꼽으라고 한다면, 늘 '비행기에 들어가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난 이제부터 떠난다!'라고 말하듯 투명한 보딩 브릿지를 통과할 때면, 늘 들떠서 소리 지르던 모습이 상상돼 웃음이 날 정도다.
그러나 이번엔 내가 그런 기내에서 일을 해야 한다니..
정식 승무원도 아닌 내가 손님들의 설렘을 망쳐버리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가장 컸다.
그리고 예상대로 비행기에 타자마자 이때까지 배웠던 지식들은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사실 나름대로 훈련 기간 동안 좋은 성적을 거듭 받아왔었는데 말이다.)
마치 앉아서 공부만 해서 실전에 약한 범생이가 된 마냥 ㅡ
훈련을 수료하기 이틀 전, 우리는 OE비행을 위한 조를 편성받았다.
정말 다행히도 입사 전부터 알고 지냈던 동기 언니와 같은 조가 되었고,
아직 정식으로 훈련을 수료하지 않아서 윙을 달 수 없던 우리는, 가슴에 달려있는 이름표만을 바라보며 서로에게 의지했었다.
훈련 당일, 한 시간 반이나 일찍 도착한 나와 동기 언니는 담당 교관님의 인솔 하에 브리핑 실로 들어갔다.
브리핑 룸에는 실제 비행을 하는 편조의 선배님들이 앉아 비행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런 여유로움과 달리 우리는 '혹시나 우리에게 질문이 돌아오면 어쩌지'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브리핑을 지켜봤었다.
(브리핑 때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면 싸한 분위기와 시선은 온전히 내 몫이 된다. 안전을 책임지는 일이기에 당연한 일이지만..)
본격적으로 비행기에 오르기 전,
승객이 타기 전인 텅 빈 항공기를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펼쳐진 풍경은 그야말로 '시장통'이었다.
객실을 깔끔하게 정리해주시는 반장님, 기내를 정비하시는 정비사님, 항공기를 점검 중인 기장님, 기물을 운반 중인 케이터링 직원님, 지상 업무를 하시는 지상 직원님이 모두 뒤 엉겨있었다.
우리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함께 항공기에 탄 선배님들도 이미 저만치 멀리서 각자의 역할을 뚝딱뚝딱해내고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 우물쭈물 서있던 나는 가까스로 교관님의 설명에 따라 짐을 정리한 후
곧 맡게 될 막내 듀티를 관습 했다.
항공기에 타자마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기내 장비를 점검하는 방법, 기타 비행을 위해 필요한 준비 등을 배우고 난 후, 부여받았던 보딩 듀티를 위해 아일(기내 복도)에 스탠바이 했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나면 시장통이었던 기내는 조용한 객실로 변한다.
(물론 딜레이 등으로 빨리 탑승을 시작해야 할 때는 예외지만.)
어색하게 좌석 사이에 서있는 내 모습에, 스스로도 민망함을 느끼며 우물쭈물 서 있었다.
"웬 애기가 보딩 하고 있냐ㅋㅋㅋ"
그날따라 다른 승무원 사이에서 유독 작아 보였을까. 아님 갓 졸업한 병아리 같아 보여서였을까.
후배를 귀여워하시는 사무장님의 웃음 가득한 눈빛이 나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아마 그날 탑승하신 손님들도 다 보였을 거다.
'아, 이 분 신입이구나..'
- 2019. 9.12. (월)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