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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은 Nov 08. 2023

#7 월동준비

 입동. 본격적으로 겨울에 들어섰다. 코끝에 닿는 공기가 제법 차가워졌다. 월동 준비를 해야 할 때가 왔다. 올해는 어떤 영화를 품고 겨울을 날까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몇 해 전부터 연례행사처럼 겨울이면 ‘윤희에게’를 보았다. 소란스럽지 않아서 감정이 진하게 전해지는 점이 좋았다. 나는 그 영화의 먹먹함을 이불 삼아 덮고 겨울의 홋카이도를 상상하며 겨울을 나는 게 좋았다. 그래서 올해 겨울에는 꼭 홋카이도에 가고 싶었다. 온통 눈으로 가득한 나라를 걷다 수프 카레로 언 몸을 녹이고, 선술집에서 따뜻한 사케도 먹고 싶었다. 또 한 해를 살아갈 수 있는 낭만을 지어 깊숙이 숨겨두고 싶었지만 무산되고 말았다. 올해 겨울에는 어떤 영화를 볼지 천천히 찾아봐야겠다.      


 작년에는 혼자 연말을 보냈다. 조금은 쓸쓸하다고 느껴지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괜찮았다. 쓸쓸한 것이야 한해의 끝이라는 상실감에서 오는 것일 뿐이고, 나는 혼자만의 시간도 잘 보내는 사람이니까. 그런 내가 월동 준비를 생각하니 ‘사람’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사랑이 아니라 사람. 이상하지만 이상하지는 않은 일이다. 다른 이름으로 깊이 잠겨있던 외로움이 이제서야 떠오르기 시작했나 보다. 사실 나는 혼자서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이지 그 속에 감정을 매우 잘 다스린다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나를 속였던 것일지도 모르고. 살다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었다. 이번 겨울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못했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다. 연말인사라는 좋은 핑계도 있으니.     


 올해는 받는 것보다는 나눌 수 있는 겨울을 보내고 싶다. 내어주어도 채워지는 따뜻함을 느끼고 싶다. 그것이 물건이든, 글이든, 마음이든. 더 따뜻한 겨울을 나기 위해 지금부터 천천히 월동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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