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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은 Nov 07. 2023

#6 모나지 않기까지 얼마나 깎여야 했을까

 토요일 저녁, 처음 보는 가게에 무작정 들어갔다. 분명히 술을 파는 것 같은데 간판도 없고 무언가 신비해 보이는 곳. 내 발길을 붙잡기 충분한 곳이었다. ‘어서 오세요~’하는 여직원의 살가운 인사를 받으며 바 자리에 앉았다.      


“저희 가게 오신 적 있으세요?”

“아니요, 처음 왔어요!”

“그럼, 뭐 파는 곳인지는 알고 오셨어요?”

“아니요? 그냥 궁금해서 들어 와봤어요!”     


 직원의 눈빛이 당황함에서 신기함으로 바뀌는 게 느껴졌다. 그녀는 뭐 파는지 모르고 들어온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고 말했고, 나는 새로운 곳에 가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나의 무모한 도전이 뭔가 대단한 취급을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가게의 이름은 ‘위캔드 커먼’ 이였고 주말에만 영업하는 맥주 가게였다. 특별한 것은, 수입 맥주를 판다는 것이었는데 정말로 시중에 파는 흔한 수입 맥주가 아닌 온통 처음 보는 것투성이였다. 신중하게 고민한 끝에 맥주를 하나 골랐다. 두체스 드 브루고뉴. 이름도 생김새도 와인같이 생긴 맥주였는데 맛도 스파클링 와인처럼 새콤한 맛이 나는 맥주였다.  

    


 

맥주를 내어주고 바 안쪽 자리에 앉은 그녀는 먼저 온 손님 한 분과 익숙한 듯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내게도 이런저런 질문을 해주며 다정하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다. 그렇게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처음 본 사람에게 오히려 속마음을 잘 털어놓을 수 있다는 그런 말이 있는 것처럼 그날의 나도 그랬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은 무엇인지, 별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막 쏟아져나왔다.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우리는 흘러가는 인연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었을까.   

   

 자연스러운 대화로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던 즈음 그녀가 말했다. “성격이 정말 좋아요, 사람이 참 모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녀의 칭찬에 웃으며 감사를 표하고 혼자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이렇게 모나지 않기까지 얼마나 많이 깎여왔을까.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애초에 어떤 모양을 한 사람이었을까. 각이 많던 내가 이리저리 치여 깎이게 된 것일까, 원래 둥글었던 내가 조금 더 마모된 것일까. 뭐든, 살아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았던 지난 시간에 대한 연민을 맥주와 함께 꿀꺽 삼켰다.     


 생각해 보면 모나지 않다는 그 말, 어쩌면 다정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둥그런 마음 2개가 맞닿으면 사랑의 형태가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럼 나는 모나지 않는 사람인 채로 남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날처럼 둥그런 대화를 나누려면, 둥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려면.


 그날, 자리에서 일어난 나를 위해 바깥까지 배웅해준 그녀도 참 둥그런 사람이었다. 그곳에 방문한 건 우연이었지만, 나는 그 따뜻함에 맞닿기 위해 또 방문하게 될 것 같다. 주말에만 영업하는 그 신비롭고 새콤달콤한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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