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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은 Nov 12. 2023

#9 첫사랑 서랍을 열어보는 밤.


 누구나 마음속 한쪽에 첫사랑 서랍이 있다. 비록 세월의 먼지가 많이 쌓였지만, 불현듯 요동치는 나만의 첫, 사랑. 첫사랑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면 남자와 여자가 다소 다를 수는 있다. 남자의 첫사랑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나 ‘건축학개론’ 등의 영화를 보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처음 사랑했던 사람을 의미하지 않을까 지레짐작해 본다. 처음인 만큼 의미 있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그 순수한 마음과 시절 그리고 추억이 소중한 것이다. 반면에 여자의 첫사랑은 새로운 사랑을 할 때마다 갱신되고는 한다. 모든 여자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다. ‘아 이 사람이 내 첫사랑이야’라고 생각하면서도 새로운 사랑을 할 때마다 최종, 최최종, 최최최종으로 자꾸 갱신되고 만다. 아마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을 ‘첫사랑’이라고 의미를 두고 싶었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더 큰 사랑을 만나면서 내 첫사랑은 계속 갱신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나에게 ‘첫 사랑하면 단번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YES’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의 첫사랑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선물해 준 사람이었다. 내 이름을 가진 다른 얼굴이 아닌 진짜 나로 당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었고 그 꾸밈없는 마음 덕분에 우리는 순도 100%의 사랑을 할 수 있었다. 또 우리의 마음은 결국 하나의 뿌리로 통하는 나무 같았다. 내가 떡볶이를 먹고 싶은 날에는 당신도 떡볶이가 먹고 싶었고, 당신이 놀이동산에 가고 싶었을 때 나도 놀이동산에 가고 싶었다. 그런 일이 너무 많아서 텔레파시가 통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하늘을 수놓은 폭죽들을 보며 두 손을 꽉 맞잡으며 사랑을 확인했던 순간, 당신의 등에 업혀 우리만의 세상에서 마음껏 행복했던 순간, 동네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마시며 보냈던 여름, 바다를 거닐며 길거리 공연을 보며 세상의 걱정은 내려놓았던 밤. 그 많은 순간이 내 서랍에 차곡차곡 쌓였다.

     

 비록 언제 갱신될지 모르는 첫사랑이지만 당신은 없고, 달빛마저 고요한 오늘 밤. 나는 남몰래 그 서랍을 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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