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음속 한쪽에 첫사랑 서랍이 있다. 비록 세월의 먼지가 많이 쌓였지만, 불현듯 요동치는 나만의 첫, 사랑. 첫사랑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면 남자와 여자가 다소 다를 수는 있다. 남자의 첫사랑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나 ‘건축학개론’ 등의 영화를 보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처음 사랑했던 사람을 의미하지 않을까 지레짐작해 본다. 처음인 만큼 의미 있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그 순수한 마음과 시절 그리고 추억이 소중한 것이다. 반면에 여자의 첫사랑은 새로운 사랑을 할 때마다 갱신되고는 한다. 모든 여자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다. ‘아 이 사람이 내 첫사랑이야’라고 생각하면서도 새로운 사랑을 할 때마다 최종, 최최종, 최최최종으로 자꾸 갱신되고 만다. 아마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을 ‘첫사랑’이라고 의미를 두고 싶었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더 큰 사랑을 만나면서 내 첫사랑은 계속 갱신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나에게 ‘첫 사랑하면 단번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YES’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의 첫사랑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선물해 준 사람이었다. 내 이름을 가진 다른 얼굴이 아닌 진짜 나로 당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었고 그 꾸밈없는 마음 덕분에 우리는 순도 100%의 사랑을 할 수 있었다. 또 우리의 마음은 결국 하나의 뿌리로 통하는 나무 같았다. 내가 떡볶이를 먹고 싶은 날에는 당신도 떡볶이가 먹고 싶었고, 당신이 놀이동산에 가고 싶었을 때 나도 놀이동산에 가고 싶었다. 그런 일이 너무 많아서 텔레파시가 통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하늘을 수놓은 폭죽들을 보며 두 손을 꽉 맞잡으며 사랑을 확인했던 순간, 당신의 등에 업혀 우리만의 세상에서 마음껏 행복했던 순간, 동네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마시며 보냈던 여름, 바다를 거닐며 길거리 공연을 보며 세상의 걱정은 내려놓았던 밤. 그 많은 순간이 내 서랍에 차곡차곡 쌓였다.
비록 언제 갱신될지 모르는 첫사랑이지만 당신은 없고, 달빛마저 고요한 오늘 밤. 나는 남몰래 그 서랍을 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