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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은 Nov 13. 2023

# 10 오늘은 핑계를 좀 대보겠습니다

   

 거울을 보다 깜짝 놀랐다. 웬 그지가 한 명 서 있는 게 아닌가. 머리는 분명 자기 전에 감았는데 잠을 잘못 잤는지 제멋대로 뻗쳤다. 거기에 반쯤 지워진 피부화장과 뾰루지가 꾀죄죄함에 단단히 한몫하고 있었다. 모든 직장인의 오후 3시 모습이라고 치부하기엔 좀 더 심한 몰골이다. 월요병 탓인가, 그냥 내 탓인가. 알 수 없는 자괴감이 밀려온다.  

   

 바쁘다는 핑계로 많은 것을 방치했다. 집안일, 독서, 일기 그리고 나를 가꾸는 일. 그중에 가장 눈에 띄게 변한 것은 바로 보이는 모습이다. 눈뜨자마자 출근하고 빈속에 커피 먼저 때려 넣는다. 그리고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다 퇴근 후에는 저녁은 대충 먹거나, 배달 음식으로 해치운다. 이건 사실 혼자 사는 보통 현대인의 삶 아닌가? 싶지만 어느새 불어난 살을 보면 ‘보통’, ‘정상’의 삶은 아닌 것 같다. 살은 왜 빼는 건 그렇게 어려운데 잠시만 방치하면 왜 금방 찌는 걸까. 너무 불공평한 일이다. 빼는 것만큼 찌기도 어려워야 공평하지! 어쨌든 이런 불균형 속에서 나는 더 찌들어 가고 그지 같아 보이게 된 것 같다는 핑계를 대본다.    

  

 삶에서 균형을 잘 잡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내 일을 똑 부러지게 하면서 운동하며 건강도 챙기고, 집안일도 잘 돌보고 자기 관리도 철저히 하는 것. 이 모든 걸 하루에 다 잘 해내는 것이 나에게는 아직 너무 어렵다. 그래도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해내지 못한다는 것에 강박은 가지지 않는다. 모든 걸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뭐 하나 실수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고, 한 곳에 집중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아주 관대한 나는 잠시 자괴감에 빠졌다가도 금방 잊어버리는데 이럴 땐 단순한 내가 좋다.     


 나는 사무실 컴퓨터 앞에 거울 하나를 두고 있다. 공주병 같은 게 아니라 일하다가 죽상의 표정을 마주하게 되면 잠깐이라도 웃자는 마음으로 둔 것이다. 비록 억지로 끌어올리는 입꼬리지만 그것도 웃는 것으로 쳐준다면 나는 그 거울 덕분에 회사에서도 몇 번은 웃는다. 오늘 그 거울 속에는 꾀죄죄한 내가 앉아있다. 몰골 때문인지 유독 입꼬리가 처져있는 것 같다. 오늘은 핑계를 대본다. 나는 지금 외모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가꾸고 있어서 잠시 꾸질꾸질한 것뿐이라고! 자자, 다시 입꼬리 끌어올리고 알아차린 김에 오늘은 집에 가서 마스크 팩이라도 해보자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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