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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은 Feb 09. 2024

#48 전 부치기 마스터인 것을 아무도 모르게

산적, 명태전, 육전, 동그랑땡까지 명절마다 엄마를 도와 부친 전이다. 명절과 제사 때마다 엄마가 고생하는 게 싫어서 어릴 적부터 손을 보태던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척척이다. 엄마가 튀김과 나물 탕국 등을 맡아서 하면 나와 동생은 전을 굽고 생선까지 굽는다. 예전에는 한나절씩 걸리던 일이 이제는 손이 척척 맞아 금방 끝난다. 오늘도 거의 12시에 시작해서 3시 반에 끝냈으니 이 정도면 금방 한 샘이다.     


 지금은 우리 집에서 음식도 하고 제사도 지내지만, 예전에는 할머니 집으로 갔었다. 그때는 엄마를 도와서 전을 부칠 때마다 입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할머니는 전 잘 굽는다고 칭찬하셨지만, 그 칭찬이 그다지 달갑게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서 다 구운 전만 집어먹는 사촌오빠도 얄미웠다. 올해는 뭐가 없니, 맛이 이러니저러니 하는 말이 얼마나 짜증 났는지 모른다. 뭐라도 하나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상전처럼 입으로 나불거렸다. 그래도 엄마를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하려고 했던 일이었다. 남편 집 조상 제사를 며느리가 준비하는 것도 생각해 보면 웃긴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 엄마는 아직도 정성스럽게 제사를 준비한다. 우리가 복 받으라고. 조상님들도 이 정도면 우리 식구들한테는 복 좀 크게 내려줘야 한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번에 공동 출간을 했던 ‘목요일의 선물’이 친척들에게도 몇 권 돌아갔던 모양이다. 생각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면서 사촌 오빠들도 몇 권 주게 더 가져오라고 엄마한테 전화가 왔었다. 그래서 이번 설에 책을 몇 권 더 가지고 내려왔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친척들이 내 책이 관심이 많을 줄 알았으면 명절 에피소드 같은 것들도 몇 개 적어볼 걸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닌가. 비록 당장 생각나는 건 없지만 뭐라도 적었으면 우리 자매의 마음과,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내가 결혼해서 전을 부쳐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전 부치기 마스터인 것을 숨기고 많은 도움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잘하면 더 많이 해야 하고 혼자 맡아서 해야 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 말을 듣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당히 못 하는 척 어리숙한 척하는 것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번 명절에도 명절 음식을 하느라 고생한 모든 며느리들과, 그 손을 거든 자식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은 내가 전을 잘 부친다는 거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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