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발아 해요?
한동안 제라늄, 유칼립투스에 꽂혀 정신없이 들이던 때가 있었다. 예쁘다고 데려오고, 공기 정화 시킨다고 부르고, 비염에 좋다고 주문하고. 갖가지의 이유로 새로운 식물이 왔다.
화원에선 차에 실어주고, 내리고 심을 땐 남편과 애들이 한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신문지로 싸서 테이프로 고정하고, 공간을 뽁뽁이나 신문지로 채우고. 때론 왕겨에 파묻혀 오기도 하고, 구근류는 상토에 묻혀 온다. 살아있는 식물의 가지나 꽃이 상하지 않게 단단히, 안전하게 포장해서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손힘이 약한 나는 포장을 벗기는 게 너무 힘들다. 하긴 거의 모든 택배가 다 그렇다. 결국 주문할 때와 받을 때의 즐거움을 포장을 풀면서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이젠 가능한 노지에 심을 수 있는 식물을 찾는다.
땅은 웬만해선 마르지 않고 자연이 주는 햇살과 공기가 천연 영양제이니 좋은 자리에 잘 심기만 하면 된다. 노지 월동을 못 하는 아이들은 화분에 심는다. 늦가을 기온이 내려가면 실내로 들여서 겨울을 나고 봄에 다시 내보낸다. 화분에 사는 애들에게 물 주기나 영양제를 챙겨주는 게 갈수록 힘들다. 내가 관리를 잘하지 못해 죽은 아이들을 보면 가슴도 아프고 기운도 빠진다. 이젠 새 식물을 들일 땐 “노지 월동하나요? 자연 발아 해요?”라고 물으며 먼저 확인한다. 집 안으로 들어오고 나가고, 물주고, 영양제 주고. 이런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 서로 부담 주지 않는 편안한 반려 식물로 만나고 싶다.
데크 위 제라늄들이 긴 꽃자루에 분홍, 주황, 빨강의 꽃을 올리고 있다. 자유롭게 자란 수형에 마른 잎, 초록 잎이 뒤죽박죽, 내 손을 부른다. 누런 잎과 꽃이 진 꽃대를 정리하니 깔끔하고 건강해 보인다. 자주 봐주고 손길을 줘야 하는데 그동안 무심했었나 보다.
유칼립투스는 다 이별했다. 나도 유칼리도 서로를 잘 몰랐다. ‘안녕, 잘 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런저런 방법으로 애써봤지만 결국 다 보낸 지금, 아쉬우면서도 홀가분하다. 꽃기린과 염좌는 스스로 잘 자라고 멜라닌 고무나무도 물 달라 보채지 않는다. 몇 종류 안 되는 다육이들, 리틀잼·성을녀·라울·엘레쎄(파필라리스)는 냉해를 입은 후 아직도 힘들어한다. 올핸 피튜니아(petunia), 로벨리아를 품고 있던 행잉 화분도 덩그러니 쉬고 있다. 팔랑 귀인 내가 올해 들인 님트리(Neem Tree)는 인도에선 ‘마을의 약방’이라 부르며 치료제나 살충제로 쓰인다고 하는데, 냉해로 잎을 다 떨구어서 죽나보다 했더니 하나둘 새잎을 내밀고 있다. ‘그렇다면 겨울엔 들여놔야 하네. 안 돼’
집안에만 있는 애들,
아레카야자는 친정에서 올해 데려왔다. 너무 커서 거실을 차지하고 있는 게 부담스럽다고 해서 냉큼 가져와 이층 난간에 놓으니 아래층 거실에서도 보이는 게(복층 구조) 싱그럽고 좋다. 거실의 벽을 제 잎으로 색칠 중인 스킨답서스, ‘악마의 덩굴’이라 불릴 정도로 생명력이 대단하다. 어린 홍콩야자는 이층에 있던 커다란 어른이 죽자, 크는 게 두려운지 거의 ‘얼음 땡’이고, 아기 스투키는 작은딸의 관심으로 몸매관리를 잘하며 크고 있다.
집안에서만 있는 식물들은 물과 영양제만 주면 되는데, 봄이 되면 나가고 겨울엔 들어오는 애들은 더 이상 늘리지 않으려고 한다. 남편과 애들이 해야 하고 바빠서 시기를 놓치면 아프고, 그럼 안타깝고. 헤어지는 건 가슴 아프다. 다른 집으로 분양하거나 나누는 건 즐겁지만 마르거나 병들어서 헤어지는 건 슬프다.
“겨울에도 밖에서 살 수 있어요? 봄에 자연 발아 해요? 노지 월동 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