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팔순여행
엄마와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즐겁기보다 걱정이 앞섰다.
집에서는 엄마가 집안일을 도와주려다 부딪치곤 했지만, 여행은 그럴 일이 없으니 다를 거란 기대를 하고 출발했다. 차를 갖고 제주도를 갈 거면 둘러보며 가도 좋을 듯해 2박 3일의 제주도 여행이 5박 6일로 늘어났다. 지금이 나도, 엄마도 가장 건강한 때니 좀 무리를 해서 보고 싶은 곳, 보여드리고 싶은 곳을 보자고 엄마와 여정을 얘기했다.
첫째 날 월요일,
군산 고군산군도로 향했다. 평소 나도 가보고 싶은 곳이었고 엄마도 처음이라고 했다. 여행의 들뜬 마음과 기대가 즐겁기만 했다.
야미도의 게 문 앞에서 찰칵, 장자도, 대장도, 무녀도, 신시도, 선유도에서 찰칵찰칵. 아름다운 바다에 반하고 맛있는 음식에 행복해하고, 바나나 라테의 시원함에 엄마도 나도 기분 좋은 출발을 맘껏 즐겼다. 저녁 무렵 도착한 완도에서 순두부로 식사하고 완도 휴양림에 묵었다.
둘째 날 화요일,
아침은 준비해 온 누룽지와 조미김으로 간단히 식사하고 완도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신지명사십리 해수욕장의 드넓은 해변과 고운 모래는 엄마를 감동하게 했고, 아직 여름 단장 중인 해변의 포토존에서 남는 건 사진이라며 열심히 찍어드렸다.
청해진유적지를 둘러볼 땐 곳곳의 안내문을 읽으며 옛날 이곳의 역할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면서 천천히 산책했으나 난 지쳐가고 있었다. 쉬기도 할 겸 식당을 찾아 점심을 먹은 후 청해포구촬영장으로 향했다. 사극에서 많이 보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이곳에서 촬영한 드라마와 영화 포스터가 전시되어 흥미롭게 바라봤다. 엄마는 저잣거리가 나오자 “여기서 장날 모습을 촬영했구나”, 포구가 나오자 “배가 있던 나루터네” 하며 드라마를 보듯 즐거워하셨다. 날씨가 너무 더워 매점 겸 식당에서 음료수를 사 먹는데 “이런 데서 일하시니 좋겠어요. 매일 이런 좋은 풍경 보고 돈도 벌고” 아주머니는 마지못해 “네. 좋아요” 그곳이 맘에 든 엄마는 “부럽네요, 좋겠어요”란 말을 5번은 한 듯하다. ‘엄마, 그분은 거기가 일터야. 놀러 온 게 아니거든.’
갯바람공원 정자에서 바닷바람 맞으며 잠시 누워 휴식한 후, 완도타워로 향했다.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완도를 내려다보려 했건만 커피점이 휴무였다. 냉방은 잘 되어있어 천천히 둘러보니 바다는 넓고 잔잔했으나 양식장의 하얀 부표가 바다에 옷을 입힌 듯 불편해 보였다.
완도는 우리나라 전복의 70% 정도를 생산한다고 하니 전복요리를 저녁으로 먹기로 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리뷰가 좋은 집을 찾아갔건만 참담한 실패. 전복요리는 당신이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게 맛있다며 음식점이 비싸기만 하고 맛이 없으니 이젠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자고 하신다. ‘어이구’
셋째 날 수요일, 새벽 두 시 반.
제주 가는 배의 크기를 보고 깜짝 놀라신 엄마, "제주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이렇게 큰 배가 어떻게 물 위에 뜰까?" 걱정과 호기심, 신기함에 마음이 고조되셨고 캡슐 침대로 되어있는 객실에 들어와서도 두리번두리번. 하긴 나도 편리해진 시설들을 보고 놀랐으니 엄마는 더 하겠지.
제주에서의 사흘간,
엄마는 근 20년 만에 제주에 오셨단다. 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었으나 내 차가 있어 편했다. 제주에선 손녀딸(나의 큰딸)과 함께하니 엄마는 마음이 풀리신 듯하다. 제주에 오는 내내 말씀하시면 태클 걸며 까칠하게 대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제주에선 큰딸이 안내하는 대로 다니며 느긋한 여정을 즐겼다.
쇠소깍에선 테우를 노 젓는 분의 즐거운 입담과 사진사(?)로서의 자신감이 우리 삼대(三代) 모녀에게 멋진 사진과 추억을 남겼고, 혼인지·올레길 등 곳곳에서 만난 수국은 부케를 한 아름 선물했다. 송악산 올레길을 걸으며 감탄하고, 방림원의 야생화와 수목들에 눈길을 빼앗기며 행복한 산책을 마치고 독특한 김밥집에서 김밥을 드시며 완도에서의 비싸고 맛없던 전복요리를 마구 험담했다. 섭지코지의 아름다운 절경에 “너무 좋다. 우리나라도 좋은 곳이 정말 많네” 아쿠아플라넷에선 “와” 신기해하고, 놀라고, 감탄하시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뿌듯했다. 절물휴양림의 고즈넉한 숲길 산책을 마친 후 처음으로 드시는 텐동(tendon)이 맛있다며 소식(少食)하시는 분이 그릇을 비우셨다. 손녀딸이 있어 더 즐거웠던 제주 여행을 마치고 제주에서 완도, 완도에서 목포로 향했다.
엿새 토요일,
숙소에서 아침을 먹은 후 신안 퍼플섬으로 향했다. 신안은 섬과 섬을 다리로 연결하고 섬마다 특색 있는 차별화를 통해 여행객을 부르고 있다. 지붕과 다리, 섬의 곳곳을 버들마편초와 라벤더를 심어 온통 보라 천국인 섬이 매력적이었다. 바다와 어우러진 섬을 둘러보며 엄마는 한동안 아버지와 다니던 서해안 섬 여행을 추억하셨다. 늦은 점심으로 송공항에 낙지를 먹으러 갔으나 「낙지 금어기」라고 한다. 그래도 신안에 왔으니 뻘낙지를 드신다고 해서 연포탕과 호롱 구이를 주문했고 주인장은 요리 전에 산낙지를 보여주셨다. “낙지가 작네. 이거 여기 거예요?” 난 “엄마” 하며 엄마의 말을 중지했다. 다행히 엄마는 맛있게 드시는 듯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여행 내내 양산과 선글라스, 마스크, 장갑으로 무장한 엄마가 불편했는데(?) 햇볕을 피해 뒷좌석 한가운데 앉은 엄마가 룸미러로 보였다. 내가 말도 없이 운전만 하자 엄마의 넋두리가 시작됐다. “딸이라고 하나 있는 게 말도 못 하게 하고 (흑흑), 내가 뭘 잘 못 했다고 말도 못 하게 하니? (노여워하시며) 여행이 아니라 네 눈치나 봐야 하고. 뭐 하러 여행 데리고 왔어?”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나도 같이 하소연을 시작했다. “난 엄마가 꽁꽁 싸매고 다니는 게 보기 싫어. 그리고 식당에서 그런 말 하는 엄마도 이해할 수 없고. 나도 엄마랑 다니는 거 힘들거든.”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집은 편안하다. 엄마도 나도 여행지의 긴장(?)에서 벗어나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다음날, 미역국을 잘 끓였다며 아침을 맛있게 드셨고, 김포로 가서 가족 모두 모여 엄마 팔순 생신을 축하했다.
이번 여행을 하며 엄마 사진을 많이 찍었다. 어제 ‘팔순 여행’ 앨범을 만들었다. 혼자 계실 때, 딸과의 불편했던 여행이었지만 즐겁게 추억하시길 바란다.
엄마를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엄마와는 왜 매번 다투게 될까?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과 옮겨지는 행동은 매번 빗나간다.
「불편한 편의점」을 읽고 나서 가족과 엄마를 손님처럼 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한다. 손님한테 친절하듯이 가족과 엄마한테도 친절해지고 싶다.
'소중한 사람들을 손님 대하듯 하자' 마음 한가운데 써 붙인다. 실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