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여행

폐렴으로 입원하다

by 제제

며칠을 집에서 감기는 시간과의 싸움이니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끙끙 앓았다. 그런데 일찍 퇴근해 온 남편이 병원에 가자는 말에 선뜻 따라나섰다. 내가 누워있는 것보다 빨리 병을 떨치는 게 집안 분위기에 낫지 싶었다.

X-ray를 찍은 후 의사는 폐에 염증이 있으니 5일 정도 입원해야 한다며 CT까지 찍는다.

남편은 출근해야 하니 상주할 수 없고, 나도 불편해 보인다며 통합간병인실로 배정받았다. 병실로 들어가자마자 놀라서 간호사에게 혼자 할 수 있으니 병실을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곧장 맞은편 병실로 옮겼다. 남편이 입원준비물을 챙기러 간 동안 침대에 걸터앉는다. 건너편 병실에서 내가 들어가며 눈을 마주쳤던 그 어르신의 고성이 들린다.


작고 마른 체격으로 엎드려서 일어나려고 바둥거리던 모습, 짧게 자른 머리에 까무잡잡한 피부. 아마 우리 고장 토박이 어르신이면 굉장한 부자일 텐데. 돈으로도 막을 수 없었겠지. 늦출 수도 없었을까. 아마 나처럼 괜찮아지겠지 하며 버티다가 시기를 놓쳤을까. 텅 빈 것 같은, 그러면서도 뭔가를 기다리며 꽉 잡으려는 강한 애착을 지닌 표정.

그 찰나에 콕 각인된 그분의 눈동자가 고성과 함께 내게 되살아난다. 내 장애를 이길 수 없을 때, 내가 누군지를 잊기 전에,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죽음과 만나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란다.


제주에서 논문 쓴다며 추석에나 온다던 큰딸이 왔다. 작은딸도 수업을 마치고 서울서 오다 도중에 남편과 만나 오고 있다고 한다. 가족이 뭔지 우울했던 기분은 날아가고 웃음만 나온다. 혼자 사는 것도 괜찮다 했는데, 마흔 넘어 결혼해 낳은 아이들은 키우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저 시간이 지나기를 그렇게 바랐는데. 어느새 커버린 애들은 고교도 기숙사에서 다녔고, 지금 대학도 기숙사에서 다니고 있다. 큰딸은 명절에나, 작은딸도 주말에나 같이 지낸다. 문득문득 아이들 어렸을 때가 행복했었구나 싶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나의 입원으로 네 가족이 다 모이니 웃음이 절로 나며 폐렴이 건네준 선물인, 가족번개팅을 즐긴다.


큰딸은 제주로, 작은딸은 서울로 남편은 공장으로 일상으로 다 돌아갔다. 나는 병실에서 담당의가 염증수치가 좋아졌으니 토요일에 퇴원해도 되겠다는 기쁜 소식을 듣는다.

폐렴은 내게 휴식이라는 또 다른 선물을 주었다.

집에서 앓았던 힘든 시간은 잊고, 지금은 7층 병실에서 입원 여행을 즐긴다. 같이 계시던 두 분이 퇴원해 독방을 쓰며, 핸드폰으로 노래도 듣고, 탭에서 밀리의 서재를 통해 토지도 다시 읽고 있다. 못 가는 지인 아들 결혼식에 축하글로 짧은 시도 썼다.


잠이 일찍 깼다. 병원에선 밤새 내내 잠자기가 힘들다. 다른 환자의 움직임, 간호사들의 수액교환과 혈압검사 등으로 인한 수시 방문...

여명을 맞는 무봉산을 바라보고 도로를 달리는 차,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다양함을 들여다본다. 이 이른 시간에도 거리는 활기차다. 난 오늘도 음악으로, 책으로, 때론 풍광에 멍 때리며 호젓한 여행을 즐긴다.

잠잘 때가 아직 불편하다. 내 숨소리가 작은 거품이 터지듯 시끄럽고, 사이사이 이상한 소리도 섞여 들린다. 기침소리도 그륵그륵. 회진 온 의사가 어제 찍은 사진에 염증이 남아있다고 한다. 봐서 주말을 보내고 퇴원하는 건 어떠냐고 하는데 난 토요일에 퇴원하겠다고 말한다. 오후 들어 기침소리가 좀 더 깨끗해졌다. 다행이다.

이제 여행을 끝내고 집에 가고 싶다. 가장 편하고, 항상 기다리고 있는 나의 집으로, 나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건강의 소중함을 다시금 되새기며 평범한 일상이 주는 행복에 감사한다. 이번의 깜짝 가족번개팅을 주선하고 내게 또 다른 휴식을 선물한 나의 폐렴에게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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