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제와 떠나는 마당 여행

by 제제


나의 별명은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에 나오는 제제다. 제제는 마당의 라임오렌지 나무에 마음을 털어놓으며 가족들의 무관심과 학대를 견디며 성장한다. 난 마당 식구들과 얘기하며 외로움과 우울함을 떨친다.


봄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키 작은 수선화와 크로커스, 복수초가 다소곳이 반갑게 맞는다. 납매, 산수유가 꽃문을 열기 시작하고, 보라색 꽃을 한아름 안고 있는 팥꽃나무가 눈길을 붙잡는다. 난 ‘반가워, 봄이구나. 예쁘다.’ 하며 사진을 찍어 팥꽃나무의 개화 소식을 알린다. 동네에서는 나름 예쁜 꽃으로 유명하다. 돌담 사이사이를 가득 채우며 꽃 대궐을 만드는 영산홍, 자산홍, 백철쭉. 예전엔 지나가는 이들의 사진 뒷배경을 장식했는데 이젠 너무 커서(제때 가지치기를 못해서) 화려함을 잃어가고 있다. 대문 옆 소나무를 타고 오르는 몬타나를 시작으로 현관 옆 벽을 오르는 스노우플레이크, 큰꽃으아리, 오월의 신부 등 클레마티스가 세련미를 물씬 풍기며 큰 얼굴로 내려다본다. 작은 키의 앵초들, 무스카리도 꽃을 올려 봄을 즐긴다. 타샤의 정원에서 온 위실나무는 우아하게 가지를 늘어뜨리고 연분홍 꽃 위로 솜털 옷을 껴입은 채 수줍게 웃고 있는 마당. 다양한 조팝나무 가족들의 앙증맞은 꽃 맵시, 댕강나무의 부드럽고 달콤한 향이 테이블을 감싸 커피 맛집을 만들고, 금낭화는 양 갈래로 머리를 묶은 소녀 같은 꽃을 주렁주렁 매달고 자태를 뽐낸다.


여름이다.

아침에 잠에서 깬 남편은 안방 창문으로 모습을 내민 라벤더 드림과 인사를 나눈다. 라벤더색의 작은 꽃을 한 줄기에 여러 송이를 매달아 덩굴 전체가 꽃으로 덮여있는 장미로, 이웃들의 예쁘다는 칭찬에 우리 부부는 흐뭇해하고 자랑스러워한다.

라벤더 드림을 시작으로 장미의 계절이 문을 연다. 한동안 장미에 꽂혀서 27그루의 각기 다른 장미를 마당 식구로 맞았다. 덩굴식물을 좋아해 덩굴장미만을 들였고, 어릴 때 담장 밖으로 보이던 빨간 장미는 너무 흔해서 싫다며 장미 명가인 오스틴 장미를 데려왔다. 비싼 만큼 곱게 키워서인지 꽃잎 수도 많고, 향도 좋고, 색도 예쁘나 너무 빨리 져버린다.

튼튼해서 오래 볼 수 있고, 향도 있으며 색도 특이한 장미들을 초대했다. ‘해당’은 연보라색의 큰 꽃을 매달고 고혹적인 진한 향을 날리는 장미로, 삽목으로 가족을 늘리고 싶었으나 가시가 너무 많아 다가가기 힘든 장미다. ‘그래. 너로 만족할게.’ ‘스펙트라’는 데크로 덩굴을 올려 가까이서 꽃과 향을 즐길 수 있다. 꽃봉오리 때는 붉은색이다가 점점 노란색으로, 질 때는 주황색으로 변하는 카멜레온 같은 화려한 장미다. 고급스러운 향과 색을 지닌 블루문, 장미 축제의 화려한 담장을 수놓는 안젤라……, 난 이름을 불러주며 예쁘다 예쁘다 칭찬하면서도 이웃에게 장미를 키우라고 권하지 않는다. 장미는 나만 좋아하는 게 아니다. 벌레도 좋아한다. 관리가 힘들다.

난 마당을 향기로 채우고 싶었다. 바람이 집안에까지 향을 전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다. 그래서 집에 있는 장미도 대부분 향기를 지니고 있다. 나의 백합에 대한 상식은 ‘흰색으로 향기를 지니고 있는 식물’이었다. 모든 백합이 향기를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향을 가진 백합만을 골라 여러 색의 백합을 마당 곳곳에 심었다. 상상대로 백합이 필 때면 향이 마당과 집안을 점령한다.

여러 색이 어우러진 마당도 보고 싶었다. 플록스, 아스틸베, 패랭이, 세이지, 매발톱, 범부채, 붓꽃 등 다양한 마당 식구들은 여름의 뜨거운 햇살 아래 그들만의 다양하고 멋진 바캉스 룩을 즐긴다.


가을이다.

여름을 즐기던 붓들레아는 아직도 기운이 남아있다. 여름 느지막이 흰 꽃을 피운 칠자화는 꽃보다 더 멋진 꽃받침의 향연을 준비 중이다. 가을이 좀 더 깊어지면 나는 금목서, 은목서의 꽃과 멋진 향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딸이 생일선물로 준 금목서는 딱 한 번 황금색의 꽃을 올리고 향을 선물하더니 삼 년째 동해와 씨름 중이다. 남부 수종이니 우리 집이 동남향이어도 화성은 추울 수 있다. 올해는 화분에 이식해 실내에서 겨울을 나게 해야겠다.

집에 있는 장미들은 다 사계 장미다. 여름에 데드헤딩을 부지런히 했으면 많은 장미꽃을 또 볼 수 있었는데, 벌레가 무서워 나오질 못한 탓에 몇 송이씩만 올리고 있다. 그래도 고맙다.

핫립세이지는 빨간 꽃, 하얀 꽃, 빨갛고 하얀 꽃이 같이 있다. 온도와 햇빛양에 따라 꽃 색이 바뀌는 거 같은데 검색해도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 여름부터 초겨울까지 1m 정도의 키에 가냘픈 몸매로 새초롬한 듯 시크하게 마당을 지킨다. 벨가못(모나르다)도 지금까지 꽃을 피우며 핫립세이지와 함께하고 있다. 대문 옆의 멕시칸세이지가 요즘 가장 화려하다. 큰 키에 보라색 융단 옷을 입은 꽃이 도도하게 서 있다. 하지만 노지 월동을 못 해 겨울 준비를 어찌해야 할지 걱정이다. 작고 노란 꽃을 풍성하게 올리는 멜람포디움, 보라색 털실 같은 작은 꽃을 올망졸망 이고 있는 아게라텀, 연한 분홍 꽃을 팝콘이 터지듯 피워 올린 팝콘 베고니아, 밤이면 부드러운 향을 솔솔 풍기는 분꽃, 가을을 대표하는 국화가 마당 이곳저곳에서 얼굴을 비비며 깨어나고, 아스타도 가을을 맞아 분주히 꽃을 올리며, 바늘꽃은 가을바람에 휘청이고 있다.


겨울이 온다.

남천이 가을 잎을 가진 채 빨간 열매를 달고 있겠지. 가지치기 전까진 몇몇 장미도 빨간 열매를 갖고 있을 테고, 붉은 찔레도 빨간 열매로 새들을 부를 것이다. 울릉도 섬개야광나무의 빨간 열매도 새를 부른다. 겨울의 하얀 눈에서 빨간 열매는 꽃인 양 눈에 띄며 새들을 유인한다. 쥐똥나무의 검은 열매는 누가 좋아하지? 그러고 보니 겨울의 마당은 열매들의 무대다.

매년 반송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했다. 올핸 오너먼트를 좀 더 준비해 겨울 마당을 재미있고 즐겁게 만들려고 한다. 그래도 겨울 마당은 외롭다. 버드피딩을 열심히 해서 직박구리, 박새, 참새 외에 곤줄박이도 초대하고 싶다.


나의 마당은 누군가는 자연스러워 좋다, 또 누군가는 잡초가 많아 어수선하다며 평이 나뉘지만, 난 내츄럴 가든이라며 자랑하고 싶다. 봄, 여름, 가을, 겨울까지 매 계절을 대표하는 식물과 밀원식물을 심었고, 화초들도 노지 월동과 자연 발아가 가능한 아이들을 향과 색, 계절까지 고려해 심고 있으며, 텃밭 채소를 가꿔 간단한 식재료를 자급하고 있다. 나의 든든한 친구로서 우리 가족과 자연에까지 건강한 마당으로 가꾸며, 나와 함께 곱고 멋지게 나이 들어갈 것이다.


어떠세요? 초대할게요. 제제의 마당으로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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