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로 도착한 양말
그것도 오프라인에서 사서 택배로 따로 부쳤으니 배송비까지 더 든 셈이다.
뭘까?
만나면 주지,
왜 이렇게까지 부쳤을까?
상자에 들어있는 한 켤레의 양말
가격을 본다. 3,600원?
아니, 잠깐! 0이 하나 더 붙었다.
36,000원?
양말 하나에?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뛴다. 어디서 바가지 쓴 거 아니야? 다급히 전화를 건다. 엄마 이거 뭐야?
양말 이 돈 주고 산 거야? 세일한 거야? 할인가격에 산 거지? 아니야? 정가라고?
양말 좋은 거 샀어.
생일선물 미리 준다 생각하고 잘 때 따습게 신고 자.
냉한 네 발 보면 마음 아파서.
밥 한 끼 둘이 안 사 먹는 값이야.
밤에 신고 자
마음이 훅 수증기 가득한 찜질방에 들어선 듯 답답해진다.
엄마는 늘 이런 식이다.
없는 형편에도 인터넷이 아니라 오프라인으로 물건을 사야 하고 책도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것보다, 인터넷으로 사서 기다리는 것보다 직접 대형서점까지 가서 눈으로 보고 사야 한다. 정가 그대로!
10% 할인과 기다리는 시간을 허락할 수 없고 즉각적으로 손에 들어오는 걸 더 좋아하는 엄마의 모습이 나는 그동안 불편했다.
꼭 그래야 했었나.
이게 뭐라고 옷도 아닌 것이
양말 하나에 36,000원?
일본 브랜드다. 다급히 핸드폰을 열어 검색해 본다. 인터넷이 더 싸면 어쩌지?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그냥 검색 안 하고 눈 딱 감으면 될 것을 이미 손가락은 마음보다 앞서 움직이고 있다.
꾸역꾸역 찾아본다.
다행이다.
인터넷에서도 그 가격이다.
마음이 조금 놓인다. 아주 조금이지만 그나마 쉽고도 이상한 위안이다.
그 후로도 36,000원은 쉽게 잊히지 않고 자꾸 떠올랐다. 구시렁구시렁거리면서 엄마를 이해해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아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동조의 뒷담화를 시작한다.
엄마가 말이야 글쎄
세상에! 그랬어?
왜 그랬대
추임새가 있으니 신이 나서 종알종알거리는데 동생이 무심코 한마디 한다.
누가 언니한테 그런 양말 사주겠어.
엄마밖에 없지. 잘 신어. 언니.
순간 심장이 쾅쾅 울린다. 엄마는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위해 좋은 것을 보자마자 내가 생각나 양말을 만지작거렸겠지. 양말치고는 고가에 선뜻 사지 못하고 또 고민했겠지. 엄마도 신고 싶었을 텐데 본인보다 내 맨발을 먼저 떠올리며 마음 바뀌기 전에 다급히 결제했겠지.
만나서 주려면 시간이 걸리니 그걸 또 택배로 보낸 것이겠지. 어린아이의 사진을 찍는 엄마의 표정처럼 그 어떤 때보다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보냈을 것이다. 역시나 되돌아올 것이 딸내미의 타박일 줄 알면서도, 언제나 한결같은 반응의 데면데면한 나를 알면서도, 딸내미가 볼멘소리는 하겠지만 그걸 감수하고도 보낸 엄마의 마음.
무한하게 쏟아주는 사랑의 시간을 받아 그 사랑으로 살고 있음에도, 그 사랑으로 지금의 내가 있고 이 시간까지 살아 있음에도 나는 여전히 내 기준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엄마에 대한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못난 딸이었다.
엄마의 마음보다 가격을 먼저 보고 눈이 똥그래졌으니 부끄럽다. 엄마의 마음을 귀하게 받고 따뜻하게 오래오래 간직하려는 마음이 먼저 들지 않아 더욱 죄송하다.
지난 11월에 받아놓고 아직까지도 기가 차서
상자에 모셔둔 양말 택을 오늘은 꼭 떼야겠다.
양말을 신고 자야겠다. 인증샷 보내야지. 애기처럼 좋아하겠지. 우리 엄만.
오늘 밤은 양말 신고 우리 엄마 꿈꾸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