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Favorite Things

by 날갯짓


황유원시인의 My Favorite Things 시를 읽다 보니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적어보고 싶어 지네. 물론 시인은


세상에 마음에 드는 것 하나 없을 때
이렇게 누군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의 리스트를 읊는 소리 들으면
분해서라도 나도 무언가 좋아하고 싶어진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리스트를 자랑하고 싶어진다

황유원, [일요일의 예술가] 시집 중
My Favorite Things


라고 말해서 기대감을 심어주더니

바로 뒷장에 이어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는 시에서


'보드카, 위스키, 피, 적그리스도, 날카로운 물소리, 지치고 병든 예술'이라는 단어들을 시의 군데군데 놓았을 뿐 아니라


‘다리 한 두 개 떨어진 채 너무 환히 밝혀진 해부대 같은 플랫폼 기어가는 밤의 딱정벌레 한 마리’라는 문장으로 나의 기분을 다소 우울하게 하는 등 기대를 와장창 깨버리기도 했지만.

정말 좋아하는 것들이 맞을까라는 의구심과 함께 시인의 의도였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마무리.


어찌 됐든 이 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로 적어보며 마음을 토닥이고 싶어진다.


예전에도 한번 적었던 것 같은데 (40대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나 ) 그 순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기도 하니까




My Favorite Things



내 글씨체를 잘 담아주는 0.5mm 볼펜

쓴 지 두 번째 날이 되는 일기장

한번 더 읽고 싶은 시집

맘에 드는 글귀를 옮겨 적는 순간

지퍼소리가 거슬리지 않는 부드러운 필통

책상에 놓인 쪽지

저녁에 마시는 따뜻한 라테

아침에 내린 커피 첫 모금

카더가든의 노랫말

김과 김치, 계란 프라이만 있는 간단한 한 끼

김치전과 갓 지은 밥

커피우유

제주위트에일

한적한 수영장의 천천한 수영

더욱이 아들과 함께 물속이라면

킥판 잡고 머리를 물 위로 내놓은 후 노래를 들으며 하는 발차기

수영장에서 나섰을 때 깊게 들이마시는 찬바람

달릴 때 선택된 노래들

마라톤을 끝마친 순간

밤의 공원

달달한 드라마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순간을 기록하는 순간

아들의 피아노 연습소리

아들의 그림 - 부연설명에 의하면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나를 생각해서 꽃을 그렸다고 했지

계절이 넘어가는 시간

비가 내리는 날은 언제나

어정쩡한 날씨 말고 특별한 날씨의 하루

비가 많이 온다던가 우중충하다던가 쨍하게 맑다던가 바람이 많이 분다던가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

나를 궁금해하는 당신

나의 취향을 기억해 주는 사람

오랜만에 안부를 전하는 오래된 친구

나를 부르는 목소리 또는 글씨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친절한 표정과 말투

미용실에서 드라이 마친 직후

공연, 전시, 영화를 예매하는 순간

새로 나온 연녹색 이파리

벽을 타고 단단히 오르기 시작한 우리 집 넝쿨식물 (널 어쩌면 좋을까, 떼어낼까, 내버려둘까)

왈칵 쏟아지는 눈물

혼자 있는 눈물

아이들을 깨우지 않아도 되는 아침

남편이 저녁밥 먹고 오는 저녁 시간

내 발을 올려놓을 수 있을 만큼 큰 너의 다리

엎드려 있는 나를 조곤조곤 밟아줄 수 있는 몸무게의 막내

이 시절 너의 무게, 내가 안아서 번쩍 들 수 있는

채워지지 않은 빈칸

나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공간

차분하지만 시끄럽지 않고 개운한 웃음소리

가까운 사람들을 위한 기도

내게 강 같은 평화를 바라는 마음

기도하고 난 후

어린아이 때 외운 율동이 기억나는 찬양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는 순간

옷의 오른쪽 주머니

머리를 단정히 빗겨내리는 순간

아이들 귀지 파주는 시간

한 명씩 이름을 부르면

내 무릎 위에 순하게 귀대고 누울 때

남편이 애들 드라이로 머리 말려주는 소리

흔한 일

배고픈 밤

이불 위에 놓인 따뜻한 물주머니

단순한 하루



쓰다 보니 끝이 없네. 황유원 시인의 시도 이해되는 순간이 있었네.

귀지라든가, 극단적인 날씨라든가... 빈칸, 눈물 나를 모르는 곳 등등 해방되고 해소되는 순간을 담아내기


그나저나 직장에서의 일 관련은 하나도 없네... 사람은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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