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김치찌개를 끓인다

by 날갯짓

집에 들어서자 부엌의 분주한 느낌이 옮겨온다. 그는 김치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신김치를 싫어하는 그는 새로 담근 김치를 썰어 넣고 두부를 사각 썰기 한다. 적당히 익은 김치도 두 집게 집어넣었다고 안 해도 되는 말을 던진다. 고기를 비롯한 모든 재료는 아끼지 않고 풍부하게ㅡ 그의 요리 비결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온통 그에게 화가 나 있었다.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나서 혼자 분에 못 이겨 우당탕탕 거리다가 그가 차린 구운 소고기와 오뎅국이 있는 밥상에 손도 안 대고 라면 하나 끓여 먹고 (그래도 먹어보겠다고) 문 쾅 닫고 들어가 잠이 들었다.


입을 다물 것

한번 더 생각하고 발설할 것

굳이 아는 체하지 말 것

쓸데없는 말 하지 않고 전하지 않을 것


말에 관한 여러 가지 다짐 리스트가 있는데

이 리스트가 머릿속에 나열되기도 전에 늘 심장과 목소리가 머리를 앞선다.

빨개진 얼굴, 씩씩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걸러지지 않은 감정의 찌꺼기들을 좌판대에 보란 듯이 펼쳐놓고야 말았다.


원래대로의 루틴이라면 실내 자전거를 타면서 드라마를 보다가 잠이 들어야 하는데 밥상 차리면서 그가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에 거부감이 들어 감정의 그래프를 치솟게 그려대고야 만 것이다. 그렇게 하룻밤이 지났다.




오늘 아침에는 파업을 할 거야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새벽 수영하며 기분이 한결 좋아졌는데 불현듯 집에 갈 생각에, 그의 얼굴 볼 생각에


찰칵 다음 필름 넘어가듯 걱정을 얼굴에 덕지덕지 붙인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집에 들어서고 나서 내내 출근준비만 한다. 고민만 했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다.




그는 아이들 세명 모두 준비시키고 밥도 챙기고 있었다. 늘 그렇듯 분주한 아침,


아이들의 아침 일상


일어나기-이부자리 정리하기-씻기-로션 바르기-옷 입기-양말 신기-밥 먹기-양치하기 일상의 기차가 끊어지지 않고 주르륵 이어지기는 결코 쉽지 않다. 조금만 방심해도 새어나갈 구멍들이 많은 아이들. 소리 지르지 않고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닌데 그래도 묵묵히 해내고 있는 중이다. 조금 누그러지는 것 같긴 한데 나는 아직도 솟아있는 두 개의 뿔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다. 수그리지 않는다. 쓸데없는 일이란 걸 알지만 쉽게 풀기는 왠지 자존심이 상한다.


출근한 사무실에서도 내내 화가 나있었지만 굳이 기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가 퇴근 후 김치찌개를 끓이고 있는 것이다. 그가 주방에 있으니 근처 가기가 어려운 나는 애먼 화분에 물을 주고 빨래를 정리한다. 오늘 부엌은 그의 차지이므로.

(그의 옆에서 나란히 밥상을 준비하기가 썩 내키지 않으므로)


아이들 모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하는데 그가 내게 밥 먹으라고 말을 건넨다.


나중에 애들 다 먹고 먹을 거야


먼저 시작한 일들을 모두 마치고 막상 손과 움직임이 허전해 설거지부터 시작하는데 애들이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나니 곧바로 정성스럽게 내 밥을 푸고 찌개를 담아준다. 그렇게 그는 또 한 번 내 문을 두드린다. 조심스럽고 단순하게


나에겐 어려운 일. 지금 내가 제일 우스운 꼴이라는 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지. 고개를 끄덕이며 김치찌개 한 숟가락 떠먹는다. '맛있네' 하고 정말 조그맣게 중얼거린다. 뚝딱 먹는 것으로 너의 행동에 대한 따뜻한 대답이 될까?




무슨 일이었는지 궁금한가? 지금 기억에도 없는 걸 보니 아주 사소한, 별일 아니었을 테지.


어찌 됐든 궁금해하지 마시길.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 누구나 겪는 비슷한 일이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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