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아래로 숨어들고 싶은 날.
그날이 딱 그랬다.
세상의 소음이 가득 차 소란함을 끊어지는 수면 아래에 그저 조용히 잦아들고 싶은 날.
그날따라 더욱 귓속을 날카롭게 찌르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태연하게 함께하고 싶지 않아 이불속 안에 웅크리고 있던 나였다.
계속 이러고 있다간 머릿속 생각마저 나와 함께 나란히 눕혀질 것 같다.
무섭게 쏟아지는 몸을 일으켰다. 전 날 저녁 일곱 시부터 누워 있었으니 열아홉 시간 만에 일어난 것.
며칠 밤을 새운 것도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까지 누워있을 수가 있지? 가끔 정신이 들었다가 다시 잠들곤 했지만 이 가수면 상태를 중단하긴 싫었다. 비록 개운하게 잔 느낌은 전혀 아니고, 오히려 버틴다는 느낌으로 그렇게 누워있었지만 말이다. 무거운 벽돌 하나를 집어먹은 듯한 느낌. 꼼짝도 하기 싫은 마음이 온몸 구석구석 내게 신호를 보내왔고 방금 걷어낸 빨래처럼 헐렁하게 나를 눕혀놓았던 것이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수업 교재인 책을 읽지 않고 학원수업에 가서는 시험을 엉망으로 본 두 아이, 성실하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감. (솔직하게 학원비가 아까운 마음이 컸나 보다.) 그런 아이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사실 이것은 그에게 있어서 날벼락일 수도 있겠지) 이런 것들이 나를 툭 길바닥에 내쳐놓은 것 같았다.
겨우 이런일로?
사실 별일 아닌 것 같지만 이 사건은 그저 성냥에 불을 지핀 순간이 되었을 뿐. 그 전부터 나를 건조하게 서서히 말려가던 일들이 내 앞에 차곡 차곡 땔감처럼 쌓여져 갔다. 인간관계의 피로감도 한 몫했다. 영원한 관계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손바닥 뒤집듯 바뀐다는 것도 알면서도 모든 것을 믿어버리고 싶은 관계. 호의를 당연시하고 배려를 잊게 되는 관계, 말과 말, 그리고 또 말이 난무하는 이 세계. 너, 나…… 누구를 나무랄 것도 없이 서로 그렇게 되는 관계, 이게 바로 인간관계의 당연한 모습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보다 몸이 먼저 한 발 앞서 마중을 나가게 되는 내가 진저리 치게 싫었다.
당신만 당신 마음 있어? 소리치고 싶고. 누구를 호구로 아나! 버럭질하고도 싶고. 아니, 그보다 누구의 눈치도 보고 싶지 않은, 내 맘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커지고 더 커졌지만 공갈빵 같은, 뻥튀기 같은 상태 때문인지 상실감이 더욱 커지는 그런 하루였다. 작고 미세한 일이 한꺼번에 훅 다가와 나를 회오리바람처럼 끌고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것만 같은 먼지 같은 일은 점점 커져서 내 손으로 받쳐 들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더 깊어지기 전에 끊어야 한다. 이럴 때 계속 누워있다가는 큰일을 내고야 말 것 같았다. 괜한 아이들과 남편, 가족들을 힘들게 할게 뻔했다.
그런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오후 3시에 예정되어 있는 자유수영 시간이었다.
화난 것을 보란 듯 눈에 띄게 벌떡 일어나 세탁실에서 수영복만 휙 챙겨 들고 슬리퍼를 끌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두려움의 시작이었던 물은 다행히 이제 두려움의 대상은 아니다. 영법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은 없지만, 물속에서는 접배평자 흉내는 낼 수 있으니. 이것저것 내가 하고 싶은 모양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물속 세상이다. 인터넷 알고리즘이 온통 수영장 푸른색을 품고 있을 정도.
우선 나는 접영 발차기의 웨이브를 가장 좋아하고 배영의 물먹기를 가장 두려워하며 평영은 ‘라르고’ 가장 느리게! 거북이 수준이다. 아니다, 거북이도 물속에서는 빠르니. 나는 육지의 거북이라고 해야겠다. 음성부력인지 하체가 자꾸 가라앉는 경향이 있고 지금 상황은 교통사고 이후 왼쪽어깨가 좀 아파서 어깨를 돌리는 영법은 (대부분이지만) 살살하는 편이다.
3시에 수영장에 들어가서 50분 숨 고르기를 제외하고는 쉬지 않고 돌았다.
숨이 가쁘고 몸이 힘든 만큼 머릿속은 개운해진다.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저 바닥으로 보이는 직사각형의 타일, 물이 머금고 있는 푸르름이 좋아 자꾸 바라보게 된다. 3시에 수영을 가서 5시까지 있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네댓 시의 햇살을 그대로 마주할 수 있다. 유리 지붕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 그 햇살에 반짝이는 수면, 그리고 역광으로 선명하면서도 흐릿한, 그럴싸하게 보이는 풍경. 그럴 때면 킥판을 잡고 머리를 빼놓고 풍경을 눈에 담는 것도 제법 행복한 시간을 얻을 수 있는 타이밍이다. 그렇게 금세 50분이 지나갔다.
10분 쉬고 또 한 번 해볼까? 쉬지 않고 수영해도 힘들긴 한데 50분만 하고 가자니 아쉽다. 레인 끝에 앉아 어린이 레인에 앉은 아이들 따라 물장구를 친다. 이 또한 재밌다. 나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 아저씨도 내 옆에서 발장구를 치고 있으니 그 또한 재밌나 보다. 시간은 천천히지만 정직하게 흐르고 정각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여기저기 첨벙첨벙 소리가 들린다.
토요일마다 같은 레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반갑기도 하다. 먼저 가라며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 발가락이 손에 닿거나 평영 발차기에 차여도 일부러 눈을 마주치며 미안하다고 하는 모습도 긍정의 마음을 준다. 나보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 보이는, 웃으며 상냥한 표정을 건네는 나보다 어린 여자의 친절에, 어떻게 저렇게 우아할 수 있지. 나도 모르게 배워야지 다짐하기도 한다.
두 시간 동안 이것저것 드릴을 하고 나니 아, 이 동작은 이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 물 잡기란 이런 거구나 새롭게 배우기도 한다.
두 시간 동안 오로지 수영에 집중. 19시간 동안 나를 무겁게 누르던, 몸을 일으키기도 못하게 한 생각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나는 이렇게 또 한 번 마음 앞에 켜켜이 올려진 담을 하나 넘었다.
수면 아래, 물속의 세계. 발차기, 손동작, 그리고 시선들 , 나의 몸을 담고 있는 이곳.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다. 오가는 말소리 없음, 감정 없음, 오로지 동작과 숨쉬기에 집중하는 나만 보일 뿐.
나를 어쩌지 못하고, 또 어쩌지 못하고 그저 어디에든 버려버리고 싶을 때 나는 나를 수면 아래로 던졌고 그곳에서 감사를 건졌다.
어지러운 나를 내려놓고, 바짝 비틀어 나를 쥐어짜는 감정을 풀어놓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