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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Mar 04. 2022

다시 일상으로

일주일간의 격리생활이 내게 남긴 것

지난주 초, 둘째가 확진자가 되었다. 이후 확진자 가족은 의무적으로 PCR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지침에 따라 인근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확진자 가족으로 검사를 받기 위해서는 가족관계증명서와 주민등록증을 지참해야 한다). 3차 접종을 하지 않아서일까?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얼마 전 썼던 글에서 언급했던 말('혼밥의 즐거움'이라는 글에서 '올해는 자주 집을 비워볼 이다'라고 했었다.)이 꼭 씨가 된 거 같았다. 집에 있으면서도 집에 없는 상황. 그야말로 집을 비운 것은 아니지만 집을 비운 상황이 되었다. '주부'라는 특수성 때문에 나의 격리는 가족 모두에게 불편함을 안겼다. 세탁도 난방 조절도 식사 준비도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확진자 문자를 받음과 동시에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남편은 집안일의 전권을 넘겨받고 필요한 물건들을 수거해 마루로 나섰다. 문이 닫힘과 동시에 즐거움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완벽하게 홀로 된 상황. 결혼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보지 않으니 바깥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그래 봤자 일주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집안은 굴러갈 터였다.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제 앞가림 다 하는 어른만 있으니까.


아침 9시가 기상인 남편은 8시면 일어나 밥을 했다. 약을 복용해야 하는 환자(?)가 있는 관계로 아침을 챙겨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계란말이를 만들어 남아 있던 밑반찬과 함께 첫 아침밥을 넣어 주었다.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남편이 지어준 첫 아침밥. 어찌나 맛나던지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만들어놓았던 밑반찬은 하루 만에 동이 났다. 다섯 식구가 모두 집에 발이 묶여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냉장고에 식재료들이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식재료들이 음식이 되기 위해서는 조리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남편은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구입하고 즉석국과 반조리 식품들을 주문해 날랐다. 식사 때면 연신 무언가를 열심히 만드는 소리가 부엌에서 왁자하게 들렸다.     


코로나와 싸운 일주일을 대략 열거해 보자면, 첫날은 휴양, 둘째~다섯째 날은 투병, 여섯째~일곱째 날은 휴양의 나날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가장 괴로웠던 날은 둘째, 넷째 날이었다. 둘째 날은 인후통으로, 넷째 날은 두통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하지만 약을 복용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통증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심한 감기를 앓은 듯 그렇게 코로나는 시간과 함께 물러났다.   


이번 격리 사태로 가장 불편을 겪은 사람은 남편이었을 것이다. 안방은 남편의 주요 활동 영역이기 때문이다. 책상도 책장도 옷장도 TV도 안방에 있으니까. 남편은 필요한 옷과 자료, 잠자리를 마루로 옮겨 생활했다. 장 보고, 청소기, 세탁기 돌리고 약 받아오느라 동분서주한 남편. 밥상을 차리느라 고생한 큰아이와 막내. 덕분에 격리의 터널을 무사히 건넜다.


방문을 열고 부엌으로 나서며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집 밖이 아닌 집 안에서 고군분투(?)했던지라 일상으로의 복귀에 별다른 감흥이 일지는 않았다. 단지 집안일에서 놓여났던 7일간이 잠시 꿈결 같았다.


냉장고를 열어 식재료들을 꺼냈다. 어묵, 당근, 진미채, 봄동, 순두부, 애호박, 팽이버섯, 콩나물, 무. 어묵과 당근을 채 썰어 볶고, 씻어낸 진미채에 양념을 둘러 조리고, 시들어버린 봄동을 데쳐 된장과 버무렸다. 애호박과 팽이버섯만으로 순두부찌개를 끓이고, 콩나물로 북엇국과 무침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남편이 좋아하는 무를 채 썰어 생채를 만들었다. 편하게 지냈던 일주일을 몸이 기억하는지 허리와 등줄기가 뻐근했다. 일상은 그렇게 다시 시작되었다.




아플 때면 힘을 모아 기꺼이 시간과 수고를 내어 보살피는 관계. 가족이란 그런 관계 속에 담겨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격리생활을 겪으며 하게 되었다. 가족으로부터 받는 상처가 그 어떤 인간관계에서 받는 상처보다 내상이 깊은 것은 그런 믿음에 근거한 관계가 다양한 형태의 욕망으로만 표출되기 때문일 것이다. 욕망이 아니라 애정이어야 가족이다.


일주일 동안 홀로 지낸 덕분일까. 분주함이 사라진 시간 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그동안 남편에 대해서는 아이들을 함께 돌봐야 할 동반자로만 욕망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흔하디 흔한 평범한 남자에게 황제펭귄 같은 극진한 부성애를 욕망했다니... 그 욕망 때문에 남편도 가족이라는 사실을 잊고 지냈다. 어쩌면 갱년기를 지나고 있을지도 모를 남편. 그제야 지난 몇 년 동안 곁눈도 주지 않았던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코로나19라는 시대의 질병은 나의 욕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는 남편에게도 애정을 내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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