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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Mar 18. 2022

출산의 기억

첫 아이를 수술로 낳았다. 거꾸로 있어서였다. 8개월이 되어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병원에서 늦게 알려준 것인지 아니면 아이가 그때 되어서야 몸을 돌린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속수무책인 환자 입장에서야 사실을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노력을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두 달 남짓 엉덩이를 치켜드는 운동을 열심히 했지만 아이는 끝내 몸을 돌리지 않았다.   


수술대에 오르던 기억은 선명하지 않다. 대신, 배 아파 아이를 낳는 여느 엄마들이 간호사에 의해 관장이라는 굴욕(?)을 겪을 동안 그런 과정을 겪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만 있다. 아이를 낳는 일은 결코 성스러운 느낌이 아니었다. 엄마가 된다는 느낌보다는 소가 되었다는 느낌이 훨씬 강했다. 결혼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출산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었다.  


마취가 풀리며 찾아든 고통은 만만찮았다. 배꼽 아래 수술자국보다 쪽 옆구리가 너무 아팠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자궁을 열십자로 갈라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충격이었다. 그러니까 수술은 배를 열고 그 속에 든 자궁을 꺼내 열십자로 갈라 아이를 꺼내는 일이었던 것이다. 뱃가죽만 갈라 아이를 꺼낸다고 생각하다니... 갑자기 바보가 된 것 같았다.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잠시 멍해졌다. 그리고 찾아든 젖몸살. 딱딱한 돌덩이처럼 굳어버린 가슴을 부여잡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실로 꿰맨 뱃가죽과 가슴에 매달린 엄청난 크기의 돌덩이를 보고 있자니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원초적이어서 비참한 마음마저 들었다. 처음 겪는 출산은 결코 위대한 여정이 아니었다(출산에 있어 망각은 축복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첫째를 낳고 딸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이상하게도 기쁨보다 슬픔이 먼저 일었다. 시집에서 그토록 원하던 아들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이 아이도 출산의 고통을 겪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여자로서 겪어내야 할 신체적, 정신적 역경들이 꽃길보다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기왕 태어날 거 남자로 태어나지,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백일 동안 밤낮이 바뀐 상황 속에서 인내심을 시험당하고, 돌이 될 때까지 품에서 내려놓을 수 없는 과정을 거치며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었다. 품에 안으면 조용해지는 아이를 돌보며 처음으로 부모가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부모는 아이를 낳은 사람이 아니라 기른 사람이라는 생각도 그때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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