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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Mar 30. 2022

그 많은 장애인은 어디에 있을까

아이의 운전기사 노릇은 라디오를 함께 들을 수 있어 즐거운 일이다. 오늘은 둘째의 요청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차를 타고 라디오를 틀었다. '최경영의 최강 시사'가 흘러나온다. 듣게 된 방송은 뉴스 톱 김준일 대표와의 대담이다. 오늘의 화두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지하철 점거 농성.   


김준일 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애인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5%라고 한다. 5천만 인구로 보면 250만 명에 달하는 숫자다. 이 중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이의 비율은 10%. 그 비율에 깜짝 놀랐다. 후천적 장애의 비율이 생각보다 너무 높아서였다. 열에 아홉은 후천적으로 장애를 얻는다니 장애가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전장연이 이동권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역사는 20여 년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시위는 언론의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국민의 힘 이준석 대표의 발언 덕(?)에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모양이다. SBS 뉴스에서도 팩트 체크에 나선 걸 보면.


시위의 시작은 2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1월 22일, 장애인 노부부가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수직형 리프트를 탔다가 7미터 아래 1층으로 추락해 사망하는 참사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언론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다. 장애인들은 분노했고, 이 죽음을 계기로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시위가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의 시위는 2017년 10월 신길역 리프트에서 발생한 장애인 추락 사망 사고의 연장선에 있다. 국회는 2004년 교통약자법(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을 제정했다. 교통 약자 이동권 개념이 처음으로 법에 명시된 것이다. 정부는 이 법에 따라 2007년부터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5개년 계획'을 수립했는데, 저상버스 도입은 바로 이 계획에 근거하고 있다. 정부는 1차 계획에서 2011년도까지 전국 시내버스의 31.5%를 저상버스로 전환하겠다고 밝혔지만, 2011년 실제 도입률은 12%에 그쳤다. 이런 일은 2차와 3차 계획까지 반복되었다. 이번 장애인 단체의 시위는 '약속'과 '파기'의 쳇바퀴가 20년 가까이 계속된 현실 속, 그간 누적된 불신과 제도 변화에 대한 절박함이 담겼다는 것이 전장연설명이다(오늘 SBS 뉴스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694588 요약).


밴쿠버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나라에서 가장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던 것은 풍경도 시설도 아니었다. 친절하고 느긋하게 인사를 건네는 버스기사, 자전거와 유모차를 끌고도 아무 불편함 없이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승객, 전동 휠체어를 타고 개를 산책시키거나 막대기 하나만으로도 자유롭게 거리를 누비는 장애인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퍽 인상적이어서, 시설이 낙후하고 서비스가 좋지 않아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부풀게 했던 마음을 단박에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그런 풍경이 마음에 담겼던 것은 아마도 그때까지 지속하고 있던 녹음 봉사 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녹음 봉사를 다니는 내내 25만 명에 달하는 시각장애인을 왜 거리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을 품었으니까.


앞서 밝혔듯이 우리나라 장애인의 숫자는 250만 명에 달한다(이는 대구 인구와 맞먹는 숫자다). 지체장애인은 120만 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청각장애인이 39만 명, 그다음으로 시각장애인이 25만 명으로 뒤를 잇는(보건복지부 '2020년도 등록장애인 현황' 참조). 이렇게 많은 장애인들을 우리는 왜 거리에서 볼 수 없는 것일까. 이는 그들을 위한 거리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이 거리로 나오기 위해서는 점자와 보도 유도블록이 거리 곳곳에 끊김 없이 설치되어야 하고, 지체장애인이 거리로 나오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와 저상버스가 100% 도입되어야 가능다.




이준석 대표가 사용한 '비문명'이라는 단어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장애인들이 문명의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문명은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 기술적, 사회 구조적인 발전.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 생활에 상대하여 발전되고 세련된 삶의 양태'라는 뜻을 담고 있다. 대한민국은 과연 문명의 사회일까.  많은 장애인을 거리에서 볼 수 없는 한 대한민국은 결코 문명의 사회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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