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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May 16. 2022

동서와 나

지금은 다섯 번으로 줄었지만 처음 시집에 갔을 때는 제사가 1년에 여덟 번 있었다. 첫 제삿날, 큰형님에게 톡톡히 신고식을 치렀다. 갓 지은 밥을 평소 하던 대로 뒤섞었기 때문이다. '제삿밥을 누가 휘저어!" 큰형님의 불호령에 동작을 멈추었던 새댁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는, 몰라서 그런 걸 좀 좋게 가르쳐주시지 싶어 서운한 마음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농부의 맏딸로 태어나 다섯 동생을 건사했던 큰형님으로서는 배울만치 배우고 사회 물을 먹었다는 스물아홉의 한국 장녀가 제삿밥 하나 제대로 풀 줄 모른다는 사실에 참 어이가 없었겠다 싶어 웃음이 난다.


1년에 제사가 여덟 번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혀를 내두르며 그걸 해내고 있다는 사실에 격려 반 안타까움 반으로 '대단하다' 추켜세웠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제사에 대해 그다지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다. 제사상이 간소한 덕분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제삿날을 진두지휘했던 동서 덕이 컸다. 손끝이 야무지고 살뜰한 동서가 아니었더라면 큰며느리 노릇을 어찌 이어나갈 수 있었을까 싶을 만큼 동서의 활약은 대단했다.  


결혼 3년 차에 동서를 만났다. 동서를 만나기 전까지 손 빠르고 바지런한 시댁의 문화에 주눅이 잔뜩 들었었다. 무슨 일을 하든 후다닥 해치우고 휴식을 취하는 형님들과 달리 무슨 일이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긴 후 돌입하는 성향이어서 시집에만 들어서면 목줄에 끌려가는 개가 된 심정이었다. 형님들도 속이 터지고 답답할 노릇이겠다 마음을 다독이다가도 그래도 그들에게는 익숙한 자신의 집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나보다는 낫지 않나 싶어 점점 억울한 마음이 부풀었다. 그러던 차에 동서가 나타났다.   


동서는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그래서 어른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지 시골의 풍습은 어떤지 잘 알고 있었다. 동서의 등장은 그야말로 천군만마였다. 삐걱대며 돌아가던 시집의 톱니바퀴가 동서의 행동과 말에 따라 기름을 치듯 매끄럽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시골살이에 무지한 입장으로서는 참으로 다행한 일었다.  


여기서 그쳤다면 동서와는 여느 동서지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놀랍게도 동서는 문화적인 것에도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음악을 좋아하고 그림을 사랑했다. 취미로 배우기 시작한 그림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 바람에 "미술을 전공했더라면 훌륭한 화가가 되었겠어"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그런데 그 말에 동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이렇게 말했다.  


"태어나서 그런 말 처음 들어요."  


나는 동서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이런 재주를 보고 그런 말을 한 이가 아무도 없다니!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에게 막연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동서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후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제사를 서울로 가져오며 동서와 미술관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동서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천진하던지 덩달아 마음이 즐거웠다.


이후 제삿날은 동서를 만나 수다를 떠는 날이 되었다. 수다를 떨다 밤을 지새우기가 다반사였다. 아이들 이야기, 그림 이야기, 책 이야기, 친정 이야기, 시댁 이야기... 해도 해도 할 말은 차고 넘쳤다. 엄마들의 웃음소리에 아이들도 제삿날을 즐겼다. 꼬치를 만들고 전을 부치고 절을 하는 일들을 놀이처럼 받아들이며 도왔다. 게다가 약과나 식혜, 녹두 시루떡, 대구전, 산적, 갈비찜 같은 음식은 제삿날에만 맛볼 수 있는 것이어서 더 신나 했다.  


동서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한 데에는 친정 이야기도 톡톡히 한몫을 했다. 이심전심. 자라며 겪어낸 부침은 동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서로의 속내를 풀어내기가 쉬웠다. 차별을 받기는 했지만 헌신적인 아버지와 억척스러운 어머니의 사랑 속에 자라 부모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형님들에게는 내색조차 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줄줄이 꿰어 나왔다. 속내를 풀어놓는다는 것. 그것만큼 사람의 관계를 끈끈하게 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 속내를 주고받은 덕에 동서와는 좋은 것을 보면 보이고 싶고 맛난 것을 먹으면 먹이고 싶은 사이가 되었다.


제삿날이면 만나던 동서는 이제는 문득 생각나면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어떤 때는 당진으로, 어떤 때는 서울로, 서로를 찾아 고속도로를 달린다. 그렇게 만나서는 풍경이 아름다운 카페를 찾아 수다로 시간을 보낸다. 어떠한 목적도 없이 만날 수 있는 관계. 그런 관계를 20년 넘게 맺어왔으면서도 수다의 샘은 마를 줄 모른다. 아니 오히려 더 퐁퐁 샘솟는다. 아마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깨달음의 시간도 늘었기 때문일 것이다. 깨달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동서라는 사실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동서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순, 내게 와줘서 참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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