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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May 21. 2022

고양이와 그들

윤이형의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를 읽고

음엔 고양이 이야기인 줄 알았다. 아닌 게 아니라 고양이 이야기이긴 하다. 소설 제목에서 보듯 첫 번째 고양이와 두 번째 고양이가 등장하니까. 하지만 소설을 읽고서야 알았다. 고양이가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소설 제목에 굳이 '그들'이라는 단어를 덧붙인 이유를.


'그들'이라 불러도 좋을 희은, 정민, 초록. 그리고 첫 번째 고양이 치커리와 두 번째 고양이 순무. 2019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는 결혼과 육아로 인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의 궤적에 접어든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이다.   


소설은 치커리와 순무의 죽음을 매개로 각기 다른 그들, 희은과 정민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희연에게 치커리가 각별하다면 정민에게는 순무가 각별하다. 그 각별함은 죽음을 대하는 자세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소설을 읽으며 상대가 내게 어떤 존재인가를 알 수 있는 잣대는 죽음을 대하는 자세에 있구나, 생각했다.


자신들이 익히 알던 결혼과는 전혀 다르게 살아가려던 희은과 정민.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예상하지 못한  변곡점들로 깨어지고 부서진다. 성실함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가난, 서로에게 힘이 되기에는 벅찬 피로, 본연의 성(여성과 남성)에서 비롯한 갈등,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회의... 역설적이게도 마주 본 덕분에 매혹되었던 그들은 그 방향성 때문에 서로를 미워하게 되었다.  


소설은 중편 분량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희연과 정민의 심연을 번갈아 들여다본다. 선명한 수사와 꼼꼼한 전개는 저마다의 사정에 귀를 기울이게 하기에 충분할 만큼 설득력 있게 심연을 그린다. 그렇게 이어지던 소설은 결말에 이르러서야 초록의 심연을 보여준다.


두 페이지에 불과한 짧은 장면이지만 초록의 심연을 들여다보니 작가의 의중을 알 것도 같았다.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아는 것. 인간은 두 번 살 수 없는 존재라서 어리석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 어리석음을 깨달으며 나아가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


작품에 뒤이어 문학적 자서전 「다시 쓰는 사람」을 읽었다. 1세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부끄러움과 인정 욕망과 적개심과 절망을 마치 다이어리를 펼쳐 보이듯 적어 놓았다. 작가가 펼쳐놓은 편린을 보면서 누구나 저마다의 삶을 살았고 살고 있고 살아가겠구나, 생각하며 위안을 얻었다.


"지금의 내겐 거창한 것들은 크게 의미가 없다. 왜 쓰는가, 무엇을 위해, 어떤 목소리로, 지금 여기에 어떤 이야기가 필요하고 시대와 타인의 고통에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하고, 예전에 너무나 열심히 고민했던 그런 질문과 대답들은 하나밖에 없는 내 사랑하는 고양이의 몸이 소각로에서 타버릴 때 같이 타버린 것 같다. 쓰고 싶은가 아닌가. 살이 다 타고 뼈가 녹아서 된 딱딱한 돌처럼 이제 내겐 그것만 남았고 그것으로 됐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이렇게 절박하고 중요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아직 나 개인의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괴롭지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을 나는 믿는 편이고 아직은 쓰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해본다."




작품에 대한 감상을 쓰고 윤이형 작가에 대해 검색하다 작가가 이상문학상의 부당함과 불공정함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절필을 선언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2002011499049882). 어찌 이런 일이! 불과 2년 전에 '그렇게 다시 시작해본다'라고 썼던 작가의 절필 선언이라니! 얼마나 힘들었으면 절필을 선언하기까지에 이르렀을까 싶어 너무나 안타까웠다. 작가가 또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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