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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Jun 06. 2022

토끼와 앨리스

2020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이소정의 「앨리스 증후군」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내 몸만 씻고, 차린 밥상만 받고, 홀로 잠들고 싶던 시절이... 지금이야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고 지나가는 순간이 아까울 만큼 소중하지만 홀로 두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재워야 하는 일이 일상의 전부였던 시절에는 나라는 인간의 인간성을 의심하며 버텨내느라 하루하루가 힘겨웠다. 그 지옥 같은 날들의 이야기. 202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앨리스 증후군은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오가 되자 앨리스는 참을 수 없었다. 2시의 여성문화센터 단주모임은 너무 까마득하고 멀게 느껴졌다. 그녀는 더욱 진하게 커피를 탔다. 오후 1시가 넘자 그녀는 참지 못하고 와인병을 딴다. 시작은 늘 우아하게 딱 한잔만이다. 대형마트에서 행사상품으로 나온 와인은 시원하게 먹을 때가 많다. 안주는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김치찌개다. 데우지 않고 식은 돼지고기와 김치를 건져 먹는다. 앨리스에게 그런 것들이 첫 끼니일 때가 많다. 어느새 앨리스는 한 병을 비운다. 그리고 시계를 본다. 시계는 1시 40분을 넘어가고 있다. 택시를 타고 간다면 충분히 닿을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앨리스는 이미 늦어버렸다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남편의 얼굴이 잠깐 떠오른다. 지각하는 앨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늦었어, 늦었어,라고 말하는 토끼굴의 토끼가 남편의 얼굴이 되어 그녀에게 뛰어드는 상상을 한다. 앨리스는 웃음이 났다. 취하면 앨리스는 그녀의 몸이 무한대로 커지는 것 같다. 평소의 그녀는 자신이 작고 어두운 집 안에 틀어박혀 아무도 관심 없는 삶을 산다고 생각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의 토끼를 남편에, 앨리스를 아내에 비유한 발상이 참신하다. 사회적 가치로 치환되지 않는 노동과 자신에게만 의지하는 아이들, 노력하는 엄마면 충분하다고 다독이기만 하는 남편은 자꾸만 앨리스를 나락으로 끌어내린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공간과 그 속에 홀로 남겨진 앨리스.


막내를 낳고 병원에 있을 때였다. 여섯 명의 산모들이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워 다 함께 뉴스를 시청하던 시간, 아이를 씻기던 엄마가 욕조에 아이를 빠트려 죽인 사건이 전파를 탔다. 그때 병실에 있던 엄마들은 하나같이 탄식을 토했다. 어째.., 저럴 수 있어, 저럴 수 있어.., 우울증이었을 거야... 산모들은 자신의 일인 듯 안타까움과 연민으로 혀를 끌끌 찼다. 엄마 손에 죽어간 아이의 삶을 헤아리기보다는 평생을 후회할 아이 엄마의 앞날에 더 마음 아파했다.   


"술에 취한 그녀는 이미 아이들의 엄마가 아니었다. 신경질적이고 폭력적인 괴물이 돼버렸다. 아이들은 아직까지 괴물이나 악당을 무서워한다. 그들에게는 이유가 없다. 나쁜 짓을 하는 이유가 없다는 것이 아이들은 늘 두렵다."


지나칠 정도로 청소에 몰입하고, 아이들이 주스를 엎지르면 불같이 화를 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 역시 청소에 취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앨리스 증후군」은 육아라는 터널을 지나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심사평에서 언급했듯 '양육과 가사는 노동의 강도만 따지는 현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감당하기 힘든 현실은 개인을 끝없는 도피의 나락으로 끌어내리기 때문이다.      


예전엔 그 시절을 지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육아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곧잘 조언이라는 걸 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섣부른 이해도 어쭙잖은 조언도 보태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터널의 시간은 있고, 터널을 지나는 이에게는 곁에서 함께하지 않는 한 위로가 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는 조언보다는 한 번의 손길이 더 절실하다. 건강을 걱정하며 밥상을 차려주는 손길, 힘들 수 있다며 눈물을 닦아주는 손길, 햇살 속으로 이끄는 손길...   


당선자는 수상소감에서 경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하철 2호선이 한강 다리를 지날 때 노을이 지면 핸드폰만 보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다 같이 그것을 바라본다고 한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경계에서, 낮과 밤의 경계에서 한 마음으로 한 곳을 바라보며 잠시 따뜻할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 여전히 세상의 작고 커다란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에 대해 오래 생각하겠다."


경계를 지나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소설을 권한다.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1912311722409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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