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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Mar 17. 2023

유한한 삶은 아름다워라

나이 들수록 단 하나의 욕망이 있다면 잘 죽는 것이다. 생로병사(生老病死). 멀리 타국에 사는 친구는 인간은 죽기 위해서는 '병'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에 지배당하지 않고 잘 죽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하다. '잘 죽고 싶다'는 마음은 존엄성을 지키며 아름답게 죽고 싶다는 열망과 다르지 않다.

그 열망을 잘 보여주는 소설이 김영하의 신작 『작별인사』가 아닐까 싶다.


AI에 대한 담론이 활발한 요즘, 소설은 누군가에게는 인간과 기계 간의 윤리적인 논쟁으로 비칠 수도 있을 듯하다. 소설의 상당 부분을 그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워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러한 이야기들이 윤리적인 논쟁이라기보다는 창조론에 대한 해묵은 숙고로 비친다. 마치 소설 『프랑켄슈타인』이나 『사람의 아들』처럼.


물론 이 소설의 주인공 '철이'는 프랑켄슈타인과는 전혀 다른 창조물이다. 그는 스스로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 휴머노이드이며 복수를 꿈꾸지도 않으니까. 소설은 중반까지는 철이가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여정이다. 그리고 후반부는 철이가 불멸의 휴머노이드이면서도 결국에는 필멸의 인간이기를 선택하는 과정이다.


그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은 복제인간 '선이'다. 그녀는 철이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진즉에 알아본 인물이며, 철이에게 "인간은 탄생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한 편의 이야기"임을 알려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의식에는 이야기가 있는 의식이 있고, 이야기가 없는 의식이 있어. 달마가 궁극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이야기가 없는 의식이야. 달마는 그걸 더 높은 차원의 의식이라고 보는 것 같아. 휴머노이드의 의식을 모두 클라우드와 네트워크로 업로드해서 하나의 거대한 의식으로 통합하려는 거잖아? 그런 의식은 탄생도, 고통도, 죽음도, 개별성도 없어.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다 사라지고 약점도 없을 거야. (중략) 인류는 오랫동안 왜 외계인들이 우리를 찾아오지 않을까 궁금해했잖아? 나는 그들도 이야기가 없는 의식의 세계로 이미 진화했다고 생각해. 너무 발전한 나머지 굳이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날 필요가 없는 거야. 삶과 죽음의 문제를 오래전에 초월했으니까. 그런데 아직 우리는 그 단계에 이르지 않았어. 아직은 나도 있고, 너도 있어. 나의 이야기도 있고, 너의 이야기도 있어."(선이의 대사 중에서)


철이는 복제인간 선이와 다른 휴머노이드 민이, 달마를 만나면서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다. 아무 효용도 없는 자신을 '아빠'라는 박사는 왜 창조했을까 하고.

 

결국 소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서이자 복제인간 선이와 휴머노이드 철이의 사랑 이야기이며 유한한 삶에 대한 예찬서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개인으로서 자신의 마지막을 사유하기 시작한 흔적들이『작별인사」 곳곳에서 발견된다"는 출판사의 서평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몇 년 전 마당에 히어리나무와 미선나무를 심었다. 작년 가을에는 복수초 구근도 묻어두었다. 원고에 고개를 파묻고 지내다 마당에 나가보니 노란 히어리 꽃은 벌써 절정을 지났고 하얀 미선나무 꽃은 한창이다. 샛노란 복수초도 화단 곳곳에서 만발이다. 잊지 않고 피어줘서 고마웠다. 잊지 않고 찾아주어 반가웠다. 우리 집 마당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고양이들도 내 기척을 듣고 나타나 편안하게 내 앞에서 제 몸을 핥는다. 인간처럼 생각하는 철이의 몸은 기계였다. 가끔 내가 그저 생각하는 기계가 아닐까 의심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순간이면 그렇지 않음을 깨닫고 안도하게 된다. 봄꽃이 피는 것을 보고 벌써 작별을 염려할 때, 다정한 것들이 더이상 오지 않을 날을 떠올릴 때, 내가 기계가 아니라 필멸의 존재임을 자각한다. 그럴 때 나의 시간은 과거와 미래에 가 있지 않고 바로 여기, 현재에 있다."(작가의 말 중에서)




『작별인사』는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9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이다. 책을 펴낸 곳은 '복복서가'. 처음 듣는 출판사 이름에 판권을 펼쳐 등록날짜를 살폈다. 2019년 11월. 그런데 책 뒷날개에 김영하의 모든 작품이 이 출판사에서 다시 출되었다. 혹시? 했더니 역시나다. '복복서가'는 작가의 아내가 대표로 있는 1인 출판사(김영하 - 나무위키 (namu.wiki) 참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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