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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Aug 17. 2023

가요계의 윤동주라 불러도 좋겠네,  잔나비

요즘은 잔나비의 노래로 하루를 연다. '꿈과 책과 힘과 벽'으로 시작해서 'DOLMARO'까지 이어지는 유튜브 믹스 곡들은 클래식이나 재즈 BGM을 틀고 일할 때와 마찬가지로 리듬을 타게 할 뿐 집중력을 흩트리지는 않아 며칠째 반복해 듣는 중이다.


잔나비의 노래를 들을 때면 낭만 가득한 노을 진 들판이 떠오르곤 했다.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가을밤에 든 생각'들이 그랬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불후의 명곡 록 페스티벌>을 보다 깜짝 놀랐다. 잔잔한 노래만 부르는 줄 알았던 잔나비 폭발적인 무대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잔나비가 록그룹이었다니!


그렇게 한 곡 한 곡 찾아 듣기 시작한 잔나비의 노래. 그러다 '꿈과 책과 힘과 벽'이라는 노래를 만났다. 이 노래는 또 무엇?!


https://youtu.be/SJUWooZnfVQ


노래 도입부를 들으니 잔나비의 청소년기가 궁금했다. 나무위키를 검색했다. 그리고 잔나비가 분당 키즈라는 사실을 알아냈다[잔나비 - 나무위키 (namu.wiki) 참조]. 대치동 키즈에 버금간다는 분당 키즈. 그 사실을 알고 노래를 들으니 반항하지 않고 나름의 방식으로 '꿈'을 꾸고 '책'을 읽으며 '힘'과 '벽'을 견뎠을 잔나비의 10대가 고스란히 그려졌다.


"해가 뜨고 다시 지는 것에 / 연연하였던 나의 작은방 / 텅 빈 마음 노랠 불러봤자 / 누군가에겐 소음일 테니 / 꼭 다문 입 그 새로 삐져나온 / 보잘것없는 나의 한숨에 / 나 들으라고 내쉰 숨이더냐 / 아버지 내게 물으시고 / 제 발 저려 난 답할 수 없었네 / 우리는 우리는 / 어째서 / 어른이 된 걸까 / 하루하루가 / 참 무거운 짐이야 / 더는 못 갈 거야 / 꿈과 책과 힘과 벽 사이를 / 눈치 보기에 바쁜 나날들 /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 무책임한 격언 따위에 / 저 바다를 호령하는 거야 / 어처구니없던 나의 어린 꿈 / 가질 수 없음을 알게 되던 날 / 두드러기처럼 돋은 심술이 / 끝내 그 이름 더럽히고 말았네 / 우리는 우리는 / 어째서 / 어른이 된 걸까 / 하루하루가 / 참 무거운 짐이야 / 더는 못 간대두 / 멈춰 선 남겨진 / 날 보면 / 어떤 맘이 들까 / 하루하루가 / 참 무서운 밤인 걸 / 잘도 버티는 넌 / 하루하루가 / 참 무서운 밤인 걸 /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 하루는 더 어른이 될 테니 / 무덤덤한 그 눈빛을 기억해 / 어릴 적 본 그들의 눈을 / 우린 조금씩 닮아야 할 거야"(책과 꿈과 힘과 벽)


'꿈과 책과 힘과 벽', '두드러기처럼 돋은 심술', '무책임한 격언'이라는 가사를 들으며 잔나비가 음유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록을 거머쥔 우리는'이라는 가사는 또 어떤가. '초록'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언제나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라는 서정주 시인의 시어를 가장 먼저 떠올렸는데 이제는 잔나비의 '초록을 거머쥔'이라는 표현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오월 하늘엔 휘파람이 분대요 / 눈여겨둔 볕에 누우면 / 팔베개도 스르르르 / 그 애의 몸짓은 계절을 묘사해요 / 자꾸만 나풀나풀대는데 / 단번에 봄인 걸 알았어요 / 이런 내 마음은 / 부르지도 못할 노래만 잔뜩 담았네 / 마땅한 할 일도 갈 곳도 모른 채로 / 꼭 그렇게 서 있었네 / (when I see her smile oh distant light) / 저는요 사랑이 아프지 않았음 해요 / 기다림은 순진한 속마음 / 오늘도 거리에 서 있어요 / 이런 내 마음은 / 부르지도 못할 노래만 잔뜩 담았네 / 마땅한 할 일도 갈 곳도 모른 채로 / 꼭 그렇게 서 있었네 / 달아나는 빛 초록을 거머쥐고 / 그 많던 내 모습 기억되리 우 / 오월의 하늘은 / 푸르던 날들로 내몰린 젊은 우리는 / 영원한 사랑을 해 본 사람들처럼 / 꼭 그렇게 웃어줬네 / (When I see her smile oh distant light)"(초록을 거머쥔 우리는)


'작전명 청-춘!'이라는 노래를 들을 때는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하모니가 점점 확장되는 부분에서는 영락없는 퀸이었다. 그러고 보니 잔나비의 노래를 듣다 보면 종종 누군가의 음악이 떠오르곤 한다. 'she'에서는 영화 <노팅 힐>의 'she'가 떠오르고, 'November rain'에서는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가 떠오른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런 노래들에서 '표절'이라는 단어는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오마주'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말하자면 선배 음악가들에게서 영감을 받고 그 영감을 자신만의 색깔로 빚어내는 것에 능통한 느낌이랄까.  


부엌에 울려 퍼지는 잔나비의 노래를 곁에서 듣던 막내가 "윤동주 같네"라는 말을 툭, 던졌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런 듯도 하다. '밤의 공원', '슬픔이여 안녕', '나는 없는 이야기' 같은 노래들은 우수와 낭만이 가득하다. 가요계의 윤동주, 잔나비를 그렇게 불러도 좋을 듯하다.


노래를 듣다 잔나비의 공식 유튜브에까지 찾아들었다. 'PONY'라는 노래의 뮤비가 뜬다. 알고 보니 지난 6월 현대차와 협업한 노래다. 엄마의 차에서 음악을 들으며 가수의 꿈을 키운 한 소년. 큰아이보다 3살 많은 가수여서일까. 뮤비를 보며 그 시절의 나와 아이들이 떠올랐다. 우울을 딛고 낭만 가득한 가수로 자라난 잔나비. 참 기특하다, 싶었다. 


뮤비를 감상하며 마우스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검지에 힘을 주었다. 구독 클릭!


https://youtu.be/rm5E5paKG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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