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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Aug 23. 2023

문과 여자가 읽는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유시민의 신작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읽었다. 그가 TV 프로그램을 통해 정재승 교수와 김상욱 교수를 만났을 때부터 이런 책을 내지 않을까 싶었다. 지적 호기심 많은 그가 자신이 모르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들의 영역을 넘보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서문에서 그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표했다. 


"방송 촬영이 아니었더라면 그토록 긴 시간을 함께 보냈을 리 없을 김상욱·정재승 교수께 특별한 감사를 드린다.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과학자라 생각해서가 아니다. (중략) 과학은 지식의 집합이 아니라 인간과 생명과 자연과 우주를 대하는 태도이며 문과인 나도 과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그분들께 배웠다. 어찌 고맙지 아니한가."


후기에서 유시민은 30년 동안 인문학만 공부했다며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인문학과 함께 과학도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인문학의 가치와 한계를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계를 넓히려면 과학의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고, 가치를 키우려면 사실의 토대 위에서 과학이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에 대해 더 그럴법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젊은 시절의 유시민은 어째서 과학에는 무관심했을까. 그에 대해 유시민은 물질의 변화에 호기심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래의 문장을 읽으며 나 역시 마찬가지여서 웃음이 났다. 


"소금을 물에 넣으면 소금은 녹아 보이지 않고 물은 짠맛이 난다. 왜 그런지 궁금하지 않았다. 물에 넣으면 녹는 게 어디 소금뿐인가. 원래 다 그런 것이려니 했다. 성냥을 그으면 불이 붙고, 짚이나 종이에 대면 불길이 번진다. 불꽃을 피우고 열을 내뿜고 재와 그을음이 남는다. 왜 그런지 궁금하지 않았다. 불에 타는 게 어디 짚과 종이뿐인가. 원래 그런 것이라 여겼다. 밤하늘의 별이 무엇인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예쁘다고만 생각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그 어떤 과학적 사실과 현상도 쉽고 간결한 인문학 언어로 바꿔 말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화학에 대해 다룬 4장은 인문학적 비유로 넘쳐난다. 


"원자는 성격이 제각각이다. 혼자서 조용히 지내는 원자가 있는가 하면, 아무 원자하고나 들러붙으려 하는 원자도 있다. 멀어져가는 다른 원자를 붙잡지 않고 다가오는 다른 원자를 밀어내지 않는 원자도 있다. 어떤 원자는 같은 원자들과 친하고 어떤 원자는 다른 원자를 좋아한다. 호시탐탐 남의 전자를 넘보는 원자가 있는가 하면, 자신의 전자를 슬쩍 내버리거나 길 잃은 전자를 조용히 영입하는 원자도 있다. (중략) 무능한 중도는 극단에 휘둘리지만 유능한 중도는 좌우를 통합한다. 탄소는 유능한 중도의 대표 사례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각주에 있다. 각주를 제외하고 읽어도 책은 별 무리 없이 읽힌다. 하지만 각주를 꼼꼼히 챙겨 읽으면 좀 더 깊은 이해와 더불어 풍성한 도서 목록을 얻게 된다. 각주에 달린 책만 읽어도 올 한 해가 즐거울 것 같다. 


책은 모두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문학과 과학, 뇌과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수학으로 나뉘어 있는 책은 그 각각의 영역에 대해 세세한 정보를 담았다기보다는 인문학도인 저자가 그 각각의 영역에 눈 뜨며 어떠한 깨달음을 얻고 얼마나 경이로움을 느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표현해야 옳을 듯하다. 


유시민은 3장(생물학)에서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느낀 '충격'과 '감동'에 대해 말한다. 충격은 "생물학 이론으로 사회주의 체제가 실패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고, 감동은 "모든 동식물 유전자는 동일한 생물학 언어로 씌어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충격과 감동 덕분에 그는 유난히 추웠던 겨울, 작업실 앞 버드나무의 안위를 걱정하게 되었으며 소련은 미국이 아니라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과 싸우다 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이성이 본성을 거스를 수 있다고 믿는 인문학자다.


"'이기적 유전자'는 문학적 표현이다. 유전자는 의식이 없다. 불변의 상태로 자신을 유지하면서 되도록 많은 생존기계에 퍼져 나갈 뿐이다. 그것이 유일한 존재 목적이다. 이기적이란 말은 그런 뜻이다. 다른 의미는 없다. 유전자가 이기적이라고 해서 유전자의 생존기계도 반드시 이기적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인간을 보라. 이기적이다. 하지만 오로지 이기적이지는 않다."


유시민은 2장(뇌과학)에서 과학과 인문학의 차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과학자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지만 철학자는 모른다는 말도 무언가 아는 것처럼 한다. 과학자와 인문학자는 무엇보다 그런 면이 다르다. 나는 그게 인문학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후기에서 인생의 막바지에 접어드는 시점에 이르러 과학에 눈뜬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워했던 것도 이러한 생각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후기에서 과학자는 이 책을 읽지 않길 바란다고 밝히고 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오류를 바로잡고 오해를 부를 수 있거나 부정확하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는 표현을 최대한 다듬었지만 충분한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문과 사람들에게 강력히 주천한다. 


"과학을 공부하면서 많을 것을 배우고 생각하고 느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언지 짚어 보았다. 인문학의 가치와 한계를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본문에서 누차 말했지만 과학에는 옳은 견해와 틀린 견해, 옳은지 틀린지 아직 모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인문학에는 그럴법한 이야기와 그럴듯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인문학 이론은 진리인지 오류인지 객관적으로 판정할 수 없다. 그게 인문학의 가치이고 한계다. 한계를 넓히려면 과학의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고, 가치를 키우려면 사실의 토대 위에서 과학이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에 대해 더 그럴법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우리 자신을 이해하려면 과학과 인문학을 다 공부해야 한다."


과학과 인문학으로 무장한 그의 다음 저서가 문과 여자는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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