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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Oct 23. 2023

수제비 한 그릇

열흘 전, 막내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남편과 막내는 용케도 코로나의 화살을 비켜갔다 싶었는데 결국 막내는 코로나에게 잡히고 말았다.  


처음에는 몸살기가 있어 내과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그런데 처방약에 해열제가 있음에도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타이레놀을 한 알 더 먹고서야 막내는 잠이 들었다. 낫는 모양이다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더니 목이 너무 아프다고 하소연을 하는 게 아닌가! 내과에서 약을 지은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이비인후과에 다시 가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막내에게 집 앞 이비인후과에 다녀오라 일렀다. 막내를 내보내며 혹시 코로나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경험상 목이 유난히 아프다면 코로나일 확률이 매우 높았다. 역시 코로나였다. 막내는 5일 동안의 격리 생활에 들어갔다.


다행히 약이 잘 듣는지 막내는 크게 앓지 않고 격리 생활을 이어갔다. 다만 입맛을 없어했다. 무얼 해줄까 고민하다 TV에 나온 수제비를 맛있겠다며 쳐다보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해줄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아픈 모습을 보니 단박에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멸치와 다시마로 국물을 내고 집에 있는 온갖 야채를 넣어 수제비를 끓였다. 오랜만에 먹는 별미여서일까. 다행히 막내는 한 그릇을 거뜬히 비웠다.  


아이들은 어릴 적 수제비를 끓일 때면 반죽하기를 즐겼다. 손에 하얗게 밀가루를 묻혀가며 반죽을 치대고 점점 커다래지는 덩이를 눈사람처럼 이리저리 굴렸다. 아이들이 만든 반죽을 끓는 육수에 뚝뚝 뜯어 넣던 그 시절에는 아이들에게도 내게도 수제비를 끓이는 일은 수고스러운 먹거리를 장만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재미있는 놀이였다. 하지만 놀이를 노동으로 인식하는 청소년 시기를 거치며 아이들은 더 이상 수제비 반죽에 손을 대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요리는 결코 놀이가 아니니 말이다. 


음식을 만드는 일은 집안일 중 가장 수고로운 일이다. 재료 구입에서부터 시작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과 결코 건너뛸 수 없는 연속성을 생각하면 더더구나 그러하다. 그래서, 가끔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들을 볼 때면 신기할 때가 있다. 어떻게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식탁 위에 밥상이 차려질 수 있을까. 그러고는 생각한다. 수고로운 일을 꾸준히, 기꺼이, 해나갈 수 있게 하는 힘, 그것이 사랑이구나 하고. 


이제, 아이들은 더 이상 수제비 반죽을 주무르지 않는다. 아이들이 수제비 반죽을 다시 하게 되는 날은 

아마도 자식을 먹이기 위해 수제비를 끓일 때일 것이다. 앞으로 아이들은 저마다 제 자식을 위해 수제비 반죽을 주무르고 송편도 빚을  것이다. 내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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