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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Oct 24. 2023

추억 돋는 무화과

추석 나들이에 나섰다가 무화과나무를 만났다. 무화과나무를 만나면 언제나 김지하 시인의 시 '무화과'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돌담 기댄 친구 손 붙들고 / 토한 뒤 눈물 닦고 코 풀고 나서 / 우러른 잿빛 하늘 / 무화과 한 그루가 그마저 가려 섰다 // 이봐 / 내겐 꽃시절이 없었어 / 꽃 없이 바로 열매 맺는 게 / 그게 무화과 아닌가 / 어떤가 / 친구는 손 뽑아 등 다스려 주며 / 이것 봐 / 열매 속에서 속꽃 피는 게 / 그게 무화과 아닌가 / 어떤가 // 일어나 둘이서 검은 개굴창가 따라 / 비틀거리며 걷는다 / 검은 도둑괭이 하나가 날쌔게 / 개굴창을 가로지른다"  


무화과가 꽃이 피지 않아 붙은 이름이라는 사실도 이 시 덕분에 알게 되었다. 꽃을 피우지 않고 맺는 열매라니. 화려한 꽃을 피우고도 실속 없는 열매를 맺는 식물이 허다한데 무화과는 꽃마저 제 속살로 채워 알토란 같은 열매로 맺어 내니 참 대단하다 싶었다.


아이들은 무화과를 보면 언제나 프랑스 애니메이션 <프린스 앤 프린세스>를 떠올린다. 그림자 극을 차용해 만든 이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 아이들은 DVD를 돌려보고 돌려보다 프랑스문화원까지 방문했었다. 이 애니메이션에는 6개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그중 하나가 무화과를 소재로 한 이야기다. 소년에게서 매일 무화과 한 알을 받아먹으며 유별나게 맛을 음미하는 여왕을 보고는 아이들은 그 맛을 무척 궁금해했다. 하지만 막상 무화과를 사 먹고는 몹시 실망했다. 여왕의 탄성처럼 대단히 달콤하지도 상큼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무화과 맛이 슴슴하기는 하다.


https://youtu.be/_LJ2hFfwMNE?si=DK-MtgnQUkqoegA8


무화과는 인류가 재배한 최초의 과일 중 하나로 열매의 빨간 속살이 꽃이다. 그래서 무화과의 과즙 또한 엄밀히 말하자면 무화과 꽃의 꿀인 셈이다[무화과 - 나무위키 (namu.wiki) 참조]. 한방에서 무화과는 위를 튼튼하게 하고 장을 맑게 하며, 종기나 상처가 부은 것을 삭혀주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또한 비위 기능을 좋게 하고 소화불량, 식욕부진, 인후통, 노인성 변비에도 효과가 있고 장염, 이질, 치질을 치료하기도 한단다(무화과 - Daum 백과 참조).


어릴 적 무시로 먹던 무화과가 알고 보니 보약이었던 셈이다. 어린 시절을 보낸 해운대에서는 흔한 게 무화과나무였다. 담장을 넘어 무화과를 맺는 집이 흔해서 골목을 지나다니며 예사로 무화과를 따먹곤 했다. 그리 열매를 따먹으면서도 꽃이 열리는지 열리지 않는지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걸 보면 관찰력이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아이였던 듯하다.  


나이가 들며 뭐든 슴슴한 맛이 입에 당긴다. 고기보다 나물이 입에 더 달고 싫어하던 홍시도 그리 맛날 수가 없다. 무화과는 말해 무엇할까. 사람도 마찬가지. 화려한 이력으로 중무장한 이들보다 내세울 이력 하나 없음에도 은은한 내공이 느껴지는 이에게 묘하게 끌린다. 마치 속꽃 품은 무화과처럼.


무화과는 9월에서 11월까지가 제철이다. 그래서 요즘 장을 보러 가면 흔하게 눈에 띈다. 그동안은 아이들이 즐기지 않는 과일이라 잘 사 먹지 않았는데 효능을 알고 나니 이제는 혼자라도 부지런히 무화과를 맛보아야겠다 싶다. 애니메이션 속 여왕처럼 탄성을 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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