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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Jan 25. 2024

천국은 멀리 있지 않아

남편과 명동으로 나선 것은 시누들에게 줄 목걸이를 고르기 위해서였다. 생일 식사자리를 앞두고 남편은 누나들에게 선물을 하고 싶어 했다. 자신의 환갑을 챙겨주고 싶어 하는 누나들의 애정 앞에 남편은 지금까지 자신이 누나들에게 선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선물로 무엇이 좋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남편은 성당에 다니는 누나들에게 줄 선물로는 십자 목걸이가 안성맞춤이겠다고 말했다. 남편의 말에 명동성당 지하에 있는 선물가게가 떠올랐다. 그곳이면 아마도 괜찮은 십자 목걸이를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나선 명동길. 주말이라 명동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동서네와 아이들과 함께 오기는 했어도 남편과 단둘이만 오기는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이후 둘만 나온 건 처음 같다는 내 말에 남편은 그런가? 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기억이 맞을 거 같았다. 그러고 보니 아이를 낳은 이후 단둘만의 생활은 기억 속에 아득했다. 단둘이 있고 싶어서, 헤어지기가 싫어서 한 결혼인데 둘만의 시간을 누릴 생각도, 만들 생각도 하지 않았다니.... 남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지하도에서 나오자마자 포장마차를 찾았다. 점심으로 먹고 나온 메밀국수가 적었던 모양이었다. 이리저리 포장마차를 기웃대다 고른 메뉴는 어묵. 가격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묵꼬치 하나가 2천 원. 떡볶이는 양이 많지도 않은데 5천 원이었다. 흘려만 듣던 명동의 높은 물가를 직접 확인하니 시절의 변화가 절로 느껴졌다. 얄팍한 어묵 세 장 값으로 6천 원을 치르고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명동성당 지하에도 사람이 많았다. 넓은 홀에 마련된 의자를 보자 얼른 엉덩이를 붙였다. 추위에 떨다 들어와서인지 급격하게 피곤이 몰려왔다. 이럴 때면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의자를 톡톡 두드리며 남편에게도 앉기를 권했다. 하지만 남편은 잠시 앉는가 싶더니 금세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남편에게 먼저 가서 구경하라고 손짓을 했다. 잠시 뒤 나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남편은 내내 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십자 형태의 목걸이만 모아 놓은 전시대 앞이었다. 어때? 남편이 물었다. 남편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목걸이에는 길쭉한 모양의 파란색 보석이 십자 형태로 박혀 있었다. 가격이 제법 나갈 것 같았다. 가격표를 보니 37만 원. 근사한 모습에 비하면 꽤 괜찮은 가격이었다. 오호. 남편의 심미안과 과감한 지출에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평소 남편은 자신이 아내보다 심미안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액세서리를 선호하지 않는 아내를 둔 탓에 보석류를 눈구경도 해본 적이 없을 텐데 이만한 목걸이를 고른 걸 보니 인정해야 할 것 같았다.


점원을 불렀다. 목걸이를 가리키며 4개를 구입하고 싶다고 말했다. 점원은 목걸이를 보더니 그 제품은 주문을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식사자리까지 남은 기간은 2주. 그 안에 제작이 가능하겠냐고 물었더니 작가에게 문의해 보겠다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남편과 나는 잠시 다른 목걸이를 둘러보며 점원을 기다렸다. 아무리 봐도 남편이 고른 목걸이보다 더 근사한 목걸이는 눈에 띄지 않았다.   


잠시 후 점원이 돌아왔다. 가능하다는 답이었다. 주문하겠다는 의사에 점원은 전체 예산을 뽑았다. 548만 원. 우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전시대로 가 가격표를 다시 보았다. 37만 원이 아니라 137만 원이었다. 와우!


가격표를 확인한 우리는 점원에게 가격을 잘못 보았다고 이야기했다. 점원은 당황해하는 우리에게 종종 그런 일이 있다며 천연 블루다이아몬드라 값이 좀 나간다고 말했다. 우리는 점원에게 다른 물건을 잠시 더 보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점원은 그러라며 흔쾌히 물러났다.   


결국 우리는 보았던 목걸이 옆에 놓여 있는 목걸이를 골랐다. 깨알만 한 블루다이아몬드가 십자 끝마다 박혀 있는 목걸이였다. 가격은 48만 원. 남편은 개당 50만 원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다며 만족해했다. 한껏 높아진 눈높이를 낮추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주머니 사정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에게 아빠의 선물 소식을 전했다. 아이들은 고모들이 눈물을 흘리겠다며 남편의 계획에 탄성을 질렀다. 그러면서 꼭 편지를 쓰라고 일러주었다. 남편은 뭐 그렇게까지...라고 말을 흐렸지만 꼭 그래야 한다는 아이들의 말에 알겠다고 확답해 주었다.


남편은 고심 끝에 편지 대신 자그마한 카드를 준비했다. "내게 빛이 되어 준 나의 누나"라고 쓴 카드를. 모임 날, 아이들 말대로 시누들은 남동생이 쓴 카드와 선물을 받아들고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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