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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Apr 01. 2024

무슨 꽃을 좋아하세요?

"엄마가 꽃다발보다는 화분을 더 좋아할 거 같아서."


꽃을 꺾는 일이 싫어서 화분을 더 좋아한다는 말을 기억하고 생일날 자그마한 화분을 들고 들어온 막내. 활짝 핀 노란 수선화를 보며 "와~ 엄마, 수선화 좋아하는데!" 기뻐했더니 "수선화를 좋아한다 그랬잖아."라며 응수한다.


누군가가 내가 한 말을 기억하고 선물을 내민다는 게 퍽 기분 좋은 일이라는 걸 막내의 꽃화분을 받아 들고 실감했다. 


볕 잘 드는 베란다에 수선화를 내어놓고 수선화에 대해 자료를 살폈다. 수선화의 수선(水仙)은 물에 사는 선녀 혹은 신선을 의미하기도 하고, 물을 많이 필요로 한다는 뜻이기도 하단다. 제주도에서는 수선화를 설중화(雪中花)라고도 부른다는데 눈이 오는 12월에도 수선화가 피기 때문이란다.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애, 자존심, 고결, 신비, 외로움[수선화 - 나무위키 (namu.wiki) 참조].


꽃말을 접하니 왠지 타인에게 무감한 나의 정서와 맞아떨어지는 듯해 뜨끔했다. 막내를 쫓아 좀 다감해져야겠네 생각하다 문득 이 기분 좋은 일을 누군가에게 해본 적이 있던가 되돌아보았다. 음... 생각나지 않는다. 식구들이 좋아하는 꽃에 대해서도 알고 있나 떠올려보았다. 음...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이제라도 물어봐야지 싶어 식구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첫째의 대답은 나름 짐작이 갔다. 산소에 핀 할미꽃을 보고 예쁘다며 좋아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기 방에서 책을 보고 있는 첫째에게 물었다. 무슨 꽃을 좋아하느냐고. 느닷없는 엄마의 물음에 첫째는 "헐!" 하는 탄성과 함께 이마를 짚으며 사뭇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꽃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네. 누구에게서도 그런 질문은 받아본 적이 없는 거 같은데."


'할미꽃'이라는 대답을 기대했던 나는 첫째의 대답을 듣고 아연해지고 말았다. 예쁘다는 말과 좋아한다는 말은 엄연히 다르지 싶은 생각과 함께 역시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첫째 곁에 있는 막내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흑장미."


막내는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추리물을 좋아하는 덕후답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는 남편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남편은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동백." 하고 짧은 답변을 내어 놓았다. 그러더니 "멋있잖아. 꽃송이 채로 똑 떨어지는 게."하고 이유를 달았다. 뒤늦게 생각이 난 걸까. 돌아나가는 등 뒤로 "진달래도!"라고 소리치는 남편. 진달래를 빼놓기가 아쉬웠던 모양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진달래꽃이라면 지나치지 않고 얼굴을 들이대 냄새를 맡던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식탁에서 밥을 먹는 둘째에게도 물었다. 둘째는 젓가락을 손에 든 채 커다란 눈망울을 끔벅끔벅 뜨며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없는데."


느긋하고 무심한 둘째의 답변에 웃음이 났다. 귀여운 녀석.


가족들이 좋아하는 꽃이 무언지 알게 된 날, 다른 사람들은 무슨 꽃을 좋아할까 궁금증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사람을 만날 때면 어김없이 질문 하나를 던지곤 한다.


"무슨 꽃을 좋아하세요?"


막내 덕분에 좋은 질문 하나를 품게 되었다. 올해는 그 질문의 답을 발판 삼아 가까운 지인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불쑥 꽃을 안겨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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