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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Dec 14. 2021

이름을 쓰렴

그림책 중에 가장 인상 깊은 그림책이 무어냐고 누군가가 물으면 망설이지 않고 피터 레이놀즈의 "점"을 꼽는다. "점"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을 무어라고 표현해야 할까. 카프카가 말한 '도끼'를 언급하면 그 충격이 이해가 되려나.


어려서 위인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수시로 주변을 떠돌았고 대개의 위인전에도 각별한 태몽과 계시가 담겨 서술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자라며 한 번도 위인이 되겠다거나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러한 태도는 타인에 대한 생각에도 영향을 미쳐서 특별하지 않은 사람의 곁에는 특별하지 않은 사람만 가득하다고 생각했다. 오합지졸의 세계. 내가 속한 세계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피터 레이놀즈의 그림책 "점"을 접한 이후 이러한 생각은 뿌리째 흔들렸다.




여기 한 아이가 있다. 미술시간이 끝났지만 아이는 여전히 교실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과제를 제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의 도화지는 백지다. 수업이 끝났는데도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채 앉아 있는 아이 곁으로 선생님이 다가온다. 선생님은 하얀 도화지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한다. 


"아, 북극곰 한 마리가 눈보라 속에 있구나." 


선생님의 이 말에서부터 그림책에 빨려 들었다. 빈 도화지를 보고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니! 선생님의 말에 아이는 이렇게 대꾸한다.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잖아요." 


아이는 그림에 재능이 없는 자신을 선생님이 놀린다고 생각한다. 표정이 뾰로통하다. 하지만 아이의 반응에도 선생님은 미소를 잃지 않는다.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한번 시작해 보렴.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는 연필을 손아귀에 감아쥐고 도화지에 힘껏 내리꽂는다. 도화지에 찍힌 선명한 점 하나. 그 점 하나가 선생님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무척 궁금했다. 일반적인 선생님이라면 아이의 불손한 태도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동작에 가만 두고 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호기심 가득 마음으로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흠... 도화지를 들어 가만히 점을 바라보는 선생님. 그러고는 아이 앞에 도화지를 내려놓으며 이렇게 말한다. 


"이제 이름을 쓰렴." 


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점 아래에 자신의 이름을 거침없이 휘갈겨 쓴다. 이런 말과 함께. 


"뭐, 그림은 그릴 수 없지만 이름은 쓸 수 있죠." 


그렇게 과제를 제출하고 집으로 돌아간 아이. 아마도 아이는 점을 잊었을 것이다. 근사한 액자 속 점과 마주하기 전까지는.


아이에게 대수롭지 않았던 점은 그다음 주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아이에게 다가선다. 멋진 액자에 담겨 미술실에 걸린, 그것도 선생님의 책상 뒤 벽면에 걸린 자신의 을 본 아이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마도 놀랐을 테고, 왠지 모르게 뿌듯했을 테고, 부끄러웠을 것이다. 금박을 두른 액자 속에 걸린 점 하나. 자신의 그림을 보며 아이는 중얼거린다. 


"저것보다 더 나은 점을 그릴 수는 있겠어!" 


이후 아이는 온갖 점을 그려 나간다. 크기도 색깔도 각기 다른 수많은 점들. 마침내 점을 그리지 않고도 점을 표현할 줄 아는 경지에까지 이른 아이는 전시회까지 열게 된다.


아마도 여기서 그림책이 끝났더라면 "점"이라는 그림책을 두고 '도끼'라는 단어까지 언급하며 이야기를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림책의 강렬함은 아이가 전시회에서 만난 또 다른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한다. 작가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아낌없이 놀라움을 마련해 놓았다.


전시회에서 아이의 그림에 반해 사인을 부탁하는 한 꼬마. 아이만큼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는 꼬마에게 아이는 틀림없이 그렇게 될 거라고 말한다. 아이의 말에 그럴 리가 없다고 대꾸하는 꼬마. 꼬마는 선 하나도 자를 대고 그려야 할 정도라며 자신의 그림 실력을 부끄러워한다. 아이는 미소를 지으며 선생님이 자신에게 그랬듯 꼬마가 들고 있는 도화지를 가리키며 말한다. 선을 그려보라고. 꼬마는 용기를 내어 선을 그린다. 구불구불한 자신만의 선 하나를. 꼬마의 구불거리는 선을 들여다보던 아이는 꼬마에게 그림을 내밀며 말한다. 


"이름을 쓰렴."




그림책을 덮고 한참 넋을 놓았던 기억이 있다.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지금까지 어떻게 아이들을 대했던가 하는 반성이었고, 이런 어른을 왜 한 번도 만난 기억이 없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었다.


이후 아이와 타인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음은 물론이다. 체념과 질책을 말하기보다는 격려를 말하기 시작했고, 사소한 것에도 눈길을 돌릴 줄 알게 되었다. 위인은 정해져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의미의 발아와 더불어 탄생한다는 사실을 "점" 덕분에 깨우치게 되었다. 그림책에 '도끼'를 갖다 붙인 건 괜한 허풍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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