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영상 관련 잡지사에 몸담았던 덕에 개봉 영화들을 시사회를 통해 가장 먼저 보는 호사를 누렸다. <더티 댄싱>과 <사랑과 영혼>으로 유명한 패트릭 스웨이지의 신작을 보게 된 것도 그 덕이었다. 그 신작이 바로 <시티 오브 조이>.
배경은 인도였고, 패트릭 스웨이지는 의사로 등장했다. 패트릭 스웨이지 주연의 영화였지만 영화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배우는 따로 있었다. 딸의 결혼 지참금을 마련하기 위해 빗속에서도 동분서주 인력거를 끌던 한 남자. 감기가 걸려 기침이라도 할라치면 나가서 기침하라고 소리를 치던 아버지를 곁에 두었던 내게 그의 헌신은 무척이나 인상 깊어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영화는 헌신적인 한 남자로 인해 이기적인 한 남자가 변모하는 이야기를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아난드 니가르'(기쁨의 도시)를 배경으로 담담하게 풀어나간다.
지금까지도 <시티 오브 조이>라는 공식적인 제목 대신 '기쁨의 도시'라고 즐겨 부르는 이 영화는 인테리어용으로 구입했던 포스터 덕에 오래 곁에 머물렀다. 무채색에 가까운 푸른빛으로 가득한, 화려하지도 멋있지도 않은 포스터. 남편은 결혼사진도 가족사진도 아니고, 자신과도 아무 관련이 없는 큼지막한 영화 포스터를 내내 벽에 걸어두는 것에 불만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쁨의 도시'는 얼마 전까지도 꿋꿋하게 식탁 위 벽면을 장식하며 나에게 위안을 주었다. 어쩌면 하자리(옴 푸리 분)가 내민 손을 잡았던 맥스(패트릭 스웨이지 분)처럼 나 또한 그가 내민 손을 내내 놓지 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랬던 '기쁨의 도시'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유화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지인의 말에 좋아하는 그림으로 에드워드 호퍼의 <바다 옆 방>을 언급했었는데 지인이 그 말을 흘려듣지 않고는 모작해 선물로 안긴 것이다. 그니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인 그림을 받고 보니 벽에 걸지 않을 수 없어 결국 '기쁨의 도시'를 내렸다. 그렇게 <바다 옆 방>은 '기쁨의 도시' 자리에 걸렸다.
<바다 옆 방>이 벽에 걸린 지 일주일이 지났다. 부엌을 드나들 때마다, 넘실대는 파도와 벽면 가득한 햇살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이들도 드나들며 '잘 그렸다' 한 마디씩 거든다. 원작을 본 적 없어 색감을 제대로 낸 건지 모르겠다고 쑥스러워하던 그니의 염려가 무색할 만큼 그림은 호평이다. 시간을 내어 선물로 빚어진 풍경을 그니에게 전했다. 여전히 쑥스러워하면서도 기쁜 기색이 역력하다.
그니에게 그림은 평생 좋은 벗이 되어줄 것이다. 벗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기쁨의 도시'도 내게 좋은 벗이었다. 두 남자의 맞잡은 손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온기로 가득했으니까. 그 벗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지 못했다. 포스터를 베란다에 정리하며 뒤늦게나마 고마움을 전한다. 그동안 고마웠어, 기쁨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