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에 대한 감각
천천히 또 길게. 갈비뼈를 닫으면서 최대한 길게.
온 몸의 기운이 연결될 수 있도록 길게.
척추 관절 하나하나를 느끼면서 자세를 곧게 펴시고.
아침을 여는 상쾌한 선생님의 목소리다. 밤새 찌뿌둥했을 몸을 움직이며 근육을 구석구석 풀어준다. 이제는 익숙해진 기구들에 앉아 동작들을 반복한다. 때로는 힘든 동작들을 하며 인상을 찌푸리고는 하는데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웃어야 좋은 일이 생기신다고 말씀하신다. 너무 힘들어요 발악을 하면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격려를 해주시고는 한다. 그렇게 기구 위에 놓여진 작디 작은 내 몸은 오늘도 한계를 시험하며 인내와 용기를 배우고 왔다.
제일 어렵고 싫은 동작은 종아리 근육을 늘리는 동작이다. 어렸을 때부터 유연성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는 내게 종아리 근육을 펴는 것은 여간 일이 아니다. 마치 지구를 들고 싸우는 인간이 된 것 같은 힘듦이다. 그 정도로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싫은 동작을 계속하게 되면 어느 순간 좋고 싫음을 떠나 단순한 반복의 형태로 동작이 체화되는 것 같다. 죽을만큼 싫었던 것들이 나중에 돌아보면 별 거 아니었던 것이 될 때가 있는 것처럼. 종아리를 계속 늘려주다보니 어느덧 종아리피기가 그냥 여러 동작 중 하나가 되었다. 반복과 익숙함이 고통을 뛰어넘어 하나의 태도를 움직일 때. 그 때 바로 우리의 인내가 발현되는 순간이 아닐까.
하나. 둘.
마지막으로 두번만 더.
일곱. 여덟.- 잘했어요.
한 동작을 보통 여덟 번 정도 반복하게 된다.
낯설고 어려웠던 동작들도 반복을 하게 되면 익숙하게 되고 점점 더 잘하게 된다. 처음에는 자세와 호흡법에 신경을 쓰며 최대한 자세가 무너지지 않고 올바른 동작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인상을 찌푸리며 질 안되는 동작을 어떻게든 해내려고 애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며 그 순간을 인내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어떠한 경지에 이른 것일까. 무생각, 무념, 무고통.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상태에서 무엇을 행위하고 있다는 나 자신이 새삼 대견하게 느껴진다. 신체와 감정이 연결되어 있다는데, 나는 아무런 감정없이 신체의 감각들을 소유할 수 있는 상태에 다다른 것이다. 너무 깊게 고민하지 않고 과감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실행력. 인내가 곧 용기가 되는 순간이다.
인내와 용기는 한 편으로는 삶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켰다. ‘일단 해보자’ 라는 생각과 ‘어떻게든 될 것이다’ 라는 긍정의 기운을 듬뿍 가져다 주었다. 이전에는 실패가 두려워 망설이는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실패를 걱정하여 시도를 하지 않는 용기 없는 실패를 두려워한다. 일단 시작을 하는 용기를 가졌다면 인내를 가지고 자신의 호흡을 가다듬으며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 무조건 참고 견디라는 무책임한 말을 전하고 싶지는 않다. 때로는 버티지 못하는 순간에 포기하는 용기도 필요한 법이니까. 하지만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일단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는 용기와 이를 통해 단련되는 인내를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인내는 자신에 대한 믿음의 결과물이자 자신을 믿는 용기 있는 자들의 호흡이다. 호흡은 되도록 길게, 천천히. 온 몸의 기운을 느끼면서. 자세는 곧게. 마음은 곱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