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은 평소보다 심하게 절었다. 무엇에 절었던가 하고 묻는다면 해줄 말이 없다. 제대로 된 대답을 찾지 못했다. 절긴 절었으나 무엇에 절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지금 절고 있구나 하는 느낌만 받았을 뿐 원인을 나는 알지 못한다. 무엇에 절었을까. 하나의 원인은 아닐 것이다. 그럴 땐 평소 뒷산에 올라 내가 사는 동네를 내려다볼 때처럼 멀리서 조망해야 한다. 무엇에 절었을까. 무언가에 심하게 절어 몸이 무거워진다. 걸음걸이가 무겁다. 한걸음 한걸음이 더디다. 걸음걸이도 절기 시작한다. 한껏 절은 상태로 집에 들어가 침대 위로 쓰러지다시피 몸을 뉘인다. 절어있는 채로 그대로 잠이 든다. 그러다 새벽에 갑자기 잠을 깬다. 그리곤 허둥지둥 휴대폰을 열어 메모를 적는다. 전 밤. 절었던 밤. 아침에 눈을 떠 새벽에 적었던 메모를 확인한다. 전 밤. 절었던 밤. 나는 무엇에 절었던가. 술은 아닐 것이다. 술일 리가 없다. 나는 어제 맥주만 마셨고 맥주는 술이 아니기 때문에 술에 절었을 리가 없다. 전날 맥주를 마시던 상황을 떠올려 본다. 나는 집에서 혼자 맥주를 마셨다. 안주도 없이 맥주만 마셨다. 혼자 마셨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래서 절었던가. 잘 모르겠다. 혼자서 맥주를 마시다 밖으로 나갔다. 평소 자주 다니던 산책로를 걸었다. 산책로를 걷다 다리를 건너 맞은편으로 넘어갔다. 내가 걷던 길은 자전거 도로였기 때문이다. 맞은편으로 건너가면서 인도를 걷다 자전거에 부딪히는 사고가 많다는 기사를 떠올렸다. 그 부분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도 그냥 떠올랐다. 나는 맞은편 산책로로 넘어가 계속 걸었다.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자기보다도 덩치가 큰 개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마주쳐지나 보낸 후 어딘가에서 봤던 입마개 논란을 떠올렸다. 그 부분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도 그냥 떠올랐다. 그 생각을 보내고 나는 계속 걸었다. 계속 걷다 보니 주변에 걷고 있는 사람들이 죄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미세먼지의 위험성을 떠올렸다. 마찬가지로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그냥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계속 걸었다. 나는 절었다. 무엇에 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절었다. 시간을 좀 더 뒤로 감아본다. 나는 맥주를 마셨다.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영화를 봤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봤다. 영화 때문인가? 그럴 만한 영화니 그럴 수도 있겠다. 좀 더 시간을 뒤로 돌린다. 봤던 영화다. 봤던 영화지만 갑자기 보고 싶어 져서 다시 봤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기분은 어떤 기분인가. 좀 더 뒤로 돌린다. 그날은 기분이 종일 좋지 않았다. 나쁜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꿈 때문이었을까. 근데 꿈 내용이 기억나질 않는다. 굉장히 안 좋은 상태로 잠을 깼는데 잠을 깬 지 몇 분 만에 꿈 내용을 잊어버렸다. 내용은 잊어버리고 감정만 남아 있었다. 꿈 내용 때문인 것 같긴 한데 결국 나는 절어있던 원인을 모른다. 너무나 많은 일들이 내 일들이 내가 모르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내 일인데도 나는 모른다. 떠내려 간다. 그냥 떠내려 갔다가 둥둥 다시 밀려온다. 둥둥 밀려 나와 한껏 젖은 채로 집으로 돌아갈 뿐이다. 매일매일이 절어있다. 나 아닌 모든 것들에 의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