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치사량

by 기묭



평소처럼 볼펜을 쥐려다 말고 연필을 쥐었다

스치고 바래져 자신도 모르게 희미하게 지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는 연필로 바꿔 쥐었다

별 뜻 없이 쥐었던 연필에서 여기까지 생각이 머물자

나는 연필을 내려놓고 다시 볼펜을 들었다

나는 쓰는 행위가 필요했을 뿐이라는 걸

침대 위 조그마한 책상을 펴

벽에 허리를 기댄 채 와인을 마시며

책을 읽고 있던 상황에 더해 내게

글을 쓰는 행위가 필요했을 뿐이라는 걸

여기까지 쓰고 약간의 대견함을 느끼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글을 전해 듣지 못했다면

연필을 쥔 채 내 안에 있는 거짓말을 적고 있었겠다는 생각에

고마움을 느끼다 여기에 옮겨 적으며

단지 글을 쓰는 행위 자체를 넘어

결국 누군가에게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래 나는 종국에 사람이었다

편히 잠들 수 있겠다

작가의 이전글What's the Date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