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독해

by 기묭


눈에 거슬리지 않는 공간에 대한 갈망이 있다. 배경이 될 수 있는 공간이 좋다. 단순하거나 혹은 복잡하거나. 흰색이거나 검은색이거나. 회색 이어선 안된다. 내가 회색이기에 공간도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게 아닌가. 회색 방에 있으면 나는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애매한 공간에 있으면 공간의 애매함에 나의 애매함을 투사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본가에서 지내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싫기만 한 것은 아니기에). 빼곡하지만 또 빼곡하지 만은 않아서 어찌어찌 사 오면 또 어찌어찌 들어가는 본가의 냉장고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나는 나 자신과 화해하기 위해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러다 옆에 떡하니 붙어있는 김치냉장고와 뒤를 돌면 보이는 아주 얌전한 오래된 하얀 냉장고에게까지 시선이 닿으면 나는 화해할 마음조차 들지 않아 그저 단념. 그럼 혼자 살던 원룸은 어떨까. 혼자 지내던 원룸은 어두운 흰색에 가까웠다. 단언컨대 회색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갈망이 식지 않았을 때였기에 약간의 뚜렷함은 지니고 있었다. 내게도 그런 의지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의지는 익숙함을 가장한 게으름에 퇴색이 되기 마련이라 내 방은 어느새 회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회색이 되어버린 걸 인정하게 되기 전에 나는 이사를 했고 회색으로 퇴색되어버린 나의 공간은 셰어하우스라는 그늘에 숨을 수 있어 드러나지 않았다. 모든 걸 내가 통제할 수는 없다는 인식은 내게 틈을 주었고 틈은 내게 면죄부를 주었던 것이다. 덕분에 다행히 나를 투사하지 않고 무사히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사하기만 해서는 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결국에는 회색이 되어버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아아, 회색도 칠하고 덧칠하다 보면 짙어진다는 걸. 사실 내가 바랐던 건 색이 아니지 않을까. 내가 어떤 색이든 긍정하고 짙어지기를 바랐던 건 아닐까. 공간에 대한 독해를 하기 전에 나에 대한 독해가 선행되어야 하겠다. 다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만 그게 이게 되기도 하고 이게 그게 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공간은 공간이라 나는 단순하거나 복잡한 공간이 좋다는 말이다. 나는 그런 공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