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닥푸닥

by 기묭


최근에 형과 엄마가 한 차례 푸닥거리를 했다. 쉬는 날인데도 집에서 일(밭일, 창고 정리 등)을 해야 한다는 것에 형은 화가 나 말을 투욱 툭 뱉었고 엄마는 화를 삭이며 부드럽게 얘기를 했다. 그렇게 마음에 안 들면 독립해서 사시라구. 형은 쒸익쒸익거리며 부동산을 알아봤고 백성이 집을 구입할 수 있는 시대는 제주도엔 아직 오지 않았다. 아빠는 '백성'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데 - '아, 이노무 백성들 지금까지 밥도 안 먹고 뭐햄수광?' 아빠 나름의 재밌는 표현인 것 같은데 쒸익쒸익대는 형의 모습을 보니 백성이란 단어가 무심히 아프다. 백성이라 불리던 시대와 지금은 과연 얼마나 다른가. 얼마나 나아졌는가. 물론 많이 다르고 많이 나아졌겠지만 아무튼 그런 느낌, 느낌적인 느낌으로. 아무튼 그냥 백성인 우리 형은 나름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자신의 집을 갖는 건 아직 무리이다. 지금은 엄마나 아빠보다도 더 많이 벌고 있지만 아무튼 그렇다. 대출 없이 집을 사려면 아마 몇 년(혹은 더 오래)간은 최소한의 비용만 지출하면서 살아야겠지. 형은 부동산 정보를 보다 자신의 한계를 직시했고 차를 몰고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길에 자조했다. '그냥 지금은 존나 버틴다.' 형은 자신의 현재 재정상황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형은 잠굼을 선언했는데 '아차.' 나는 속으로 '아차!' 싶었다. 이제 매일 저녁쯤 오던 '지금 편의점인데 뭐 먹고 싶은 거 없냐?'는 전화는 오지 않는다. '일찍 끝나서 치킨 사고 감.'이라는 카톡은 오지 않는다. 나는 지금 쓰면서도 슬프다. 그렇게 한 차례의 푸닥거리는 부동산 시세를 확인한 형의 자조 섞인 웃음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점심을 먹고 기분 좋게 늦은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 뚜둔. 나는 엄마의 평소보다 높은 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좋지 않았다. 아무도 빨래를 개어 놓지 않은 걸 보고 엄마는 쒸익쒸익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얌전히 일어나 쒸익쒸익대면서 빨래를 개고 있는 엄마 옆에 앉았다. 형은 볼일이 있다고 나갔고 형이 나가자 엄마는 쒸익쒸익거리다 푸닥푸닥거리기 시작했다. 당사자들끼리 푸닥거리면 싸움이 날 테니 중화시키기 위해선 내가 대신 들어주어야 했다. 그거 일 도우면 얼마나 돕는다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아무 말없이 빨래랑 청소랑 다 해주니까 당연한 줄 안다고. 암요암요. 나는 별다른 견해를 밝히지 않고 얌전히 듣기만 했다. '엄마네랑 너네랑 사고방식에 차이가 있는 건데 어?! 엄마네는 이렇게(쉬는 날에 밭일이나 그런 거)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구나 하고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면 되는 거지 너네 형은 꼭 말을 상처 받게 한다니까.' 암요암요. 형이 말을 툭툭뱉는 경향이 있지요. 엄마의 푸닥거리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나는 뚜렷한 직업 없이 얹혀사는 입장으로서 얌전히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엄마는 내게 장을 보러 갈 거냐고 물었다. 점심에 엄마와 통화했을 때 나는 집에 혼자 있을 때 먹을 것이 없으니 장을 봐야 할 것 같다고 건의를 드렸었는데 그것에 대한 물음이었다. '가면 가고 안 가면 안 가고.' 나는 애매하게 대답했다. 엄마와 나는 빨래를 정리하고 잠시 쉬다가 장을 보러 나섰다. '너 돈으로 장을 보는 게 아니니까 가면 간다고 한 거야?' 차 시동을 걸며 엄마가 물었다. '응, 나 카드에 4천 원 남았어.' 엄마는 피식 웃었다. 마트에 도착한 후 화가 어느 정도 사그라든 엄마는 고민하지 말고 사고 싶은 거 다 사라고 했다. 개이득인 부분이었지만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자제했다. 이럴 때일수록 자제해야 한다. 나는 필요한 것만 최소한으로 구입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이젠 푸념을 늘어놓았다. 엄마의 푸념을 들으며 나는 마음으로 수긍했다. 그래, 이번엔 형이 말이 좀 심했어. 집에 도착해서도 엄마의 푸념은 계속됐다. '딸이 있었으면 이럴 때 딸이 들어주고 하는 건데 이렇게 너한테라도 얘기 안 하면 엄마도 힘들고 그래.' 그게 딸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얌전히 듣기만 했다. 암요암요. 엄마의 푸념은 형이 들어오면서 끝이 났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형과 엄마는 사소한 대화를 나눴고 형이 방으로 들어가자 엄마는 내게 속삭였다. '내가 뭐 막 얘기했던 거 형한텐 말하지 말고.' 암요암요. 제가 다 안고 가겠습니다. 나는 스파이가 된 기분으로 형 옆에 누워 잠을 청했다.

작가의 이전글무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