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프다

by 기묭
오늘 아침


배가 고프다. 아침 7시 30분, 일어나자마자 아빠가 먹다 남긴 과자를 먹고 다시 잤다. 1시쯤 일어나 거실 탁자 위에 있는 바나나 뭉치에서 두 개를 떼다 먹었다. 저녁까진 버틸 수 있겠다. 바나나를 먹고 비타민 알약을 하나, 강황 알약을 하나 먹었다. 1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몹시 배가 고프다.


어제


아침 9시, 일어나자마자 거실로 나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유산균을 한 포 뜯어 입 안에 털어 넣는다. 침대로 가 다시 눕는다. 누워서 통화를 하다가 11시쯤 다시 거실로 나온다. 운동을 한다. 운동을 하고 있는데 엄마에게서 전화가 온다. 이모(엄마 친구)가 냉면 사준데 나와라. 차가 없어. 버스라도 타고 나와. 옆에서 듣던 이모가 말한다. 너가 데리고 와라. 엄마가 묻는다. 데리러 가? 내가 대답한다. 굳이 온다면 말릴 이유는 없지. 개시키. 엄마가 말한다. 나는 엄마 차를 타고 냉면을 먹으러 간다. 이모네 김밥집에서 여름을 맞아 냉면을 개시했다. 엄마와 나는 구석 직원 전용 탁자에 앉아 김밥과 냉면을 먹는다. 더 줄까? 이모가 말한다. 아니요 배불러요. 엄마가 말한다. 얘는 도가 터가지구 잘 안 먹어. 우리는 배가 불러도 알아도 계속 먹잖아. 얘는 안 그래. 옆에서 듣던 누나(이모 딸)가 말한다. 맞어, 저번에 같이 여행 갔을 때 남자애니까 많이 먹지 않을까 했는데 안 먹더라구. 나는 코를 긁적인다. 엄마가 묻는다. 어떻게 그러냐구. 며칠 전 형 생일을 하루 앞당겨 집에서 가족끼리 샤브샤브를 먹고 있을 때였다. 우리 집은 특별한 날이면 샤브샤브를 먹는데 야채와 고기를 먹고 라면사리로 마무리하는 게 보통의 루틴이다. 나는 야채와 고기를 먹다 배가 부르다고 먼저 일어났고 남은 가족들은 라면사리까지 먹고 고통을 호소하며 마무리했다. 엄마는 당시의 일화를 꺼내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물었다. 다들 비슷한 양을 먹는 편이라 다들 배가 부른 건 마찬가지였는데 어떻게 거기서 끊고 일어날 수 있었냐고. 나는 먹는 것에 대해 별로 욕망이 없다고 대답한다. 얼른 자리를 피하고 싶어서 라고는 얘기하지 않는다.

갈수록 밥 먹는 자리가 불편해진다. 가족과도 그러기 때문에 남들과 먹는 자리는 더 불편하다. 얼른 먹고 일어나고 싶다. 쫓기는 사람처럼 나는 허겁지겁 먹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쫓기긴 한다. 나를 쫓는 사람이 있다. 내가 나를 쫓는다. 나는 나한테 쫓기고 있어서 피할 수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니 이해가 된다. 더 정확히는 쫓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만들어낸 나에게 가고 싶어서. 허겁지겁 쫓아가야 하니까 나는 밥 먹을 시간도 잠을 잘 시간도 아껴가면서 쫓아야 하지 않을까 하며 쫓고 있진 않을까.


지금


도망치는 걸 쫓고 있다고 하는 건 아닌지. 헷갈릴 때가 있다.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내가 선택하기 나름이라고 한다면 그래, 일단은 쫓고 있다고 하자. 결국에는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면 되지 않을까. 쫓고 있는 상황이라고 선택하기로 한다면 그래, 행동이 수반되어야 하겠지. 도망이라면 굳이, 행위 없이도 자신을 속일 수 있기 때문에 행위를 하는지 하지 않는지를 통해 근거를 찾아야 하겠다. 쫓는다면 나는 다시금 정비를 해야 하겠다. 잠시 흐트러지긴 했으나 다시금 정비를 해야 하겠다. 지켜야 할 것들. 나와의 약속. 나는 나를 다시금 협상 테이블로 끌어와 협의를 한다. 제대로, 똑바로 쫓기 위해서 해야 할 것들. 흐릿한 선들을 명확히 긋는 일들. 가지를 치는 일, 썩은 가지를 쳐내는 일. 그 이전에 일단 밥을 제대로 먹는 일. 쫓기 위해서는, 오래 걸릴 것 같으니 든든히 먹어야 하겠다. 일단 먹자. 나는 지금 몹시 배가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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