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리링, 하고 종이 울린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어서 오세요'라고 말한다. 시선은 진열장에 고정하되 시야 안으로 계산대가 들어오도록 한다. 상품을 진열하다 계산대 앞으로 손님이 다가오면 장갑을 벗고 계산대로 향한다. 고개를 숙인 채로 상품의 바코드를 찍고 금액을 불러주고 비닐의 사용 여부를 묻는다. 거스름 돈을 거슬러 주면서까지 나는 끝내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다. 손님의 얼굴에 초점을 향하지 않는다. 지난 한 달간 편의점에서 일하며 저절로 익힌 잊혔던 본능이다. 뒤 없이 막힌 조그만 공간 안에서. 줄 서 기다리는 많은 이들의 시선으로부터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그래도 종국엔 빼앗기기 마련이라 눈알의 힘은 풀려 어느 한 곳에도 초점을 잡지 않은 채 나는 무력한 몸짓으로 계산대를 지키며 퇴근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불쑥, 계산대 위로 들어온 손에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힘내세요' 얼굴을 봤다. 내 또래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방금 계산한 쿠키 중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크리스마스잖아요' 크리스마스였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다음으로 종일 빼앗겼던 것들이 들어왔다. 이런 날도 있어야지.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무언가가 들어왔고 그 무언가는 그 자신의 무게만큼의 용기로 바뀌었고 나는 그 용기로 오전 중 한 친구의 안부로 되살아난 단체 카톡방에서 주목을 받아낼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다들 그래, 빡세게 살고 있구나.
크리스마스 이후로 조금은 고개를 들어볼 여유가 생겼다. '크리스마스잖아요' 때문인 것도 있고 슬슬 전반적인 업무와 손님 응대가 익어갈 무렵이어서 이기도 하다. 융통성이 생겼고 틈틈이 책을 펼쳐볼 수 있었다. 점장님이 안 계실 때면 매장의 음악을 줄이고 휴대폰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다. 내가 튼 음악을 듣다 무심코 따라 부르던 손님도 있었다. 들어왔다. 마냥 빼앗기기만 하던 나날은 지났다. 나를 둘러싼 작은 공간에 대해 자신감을 누리고 있을 즈음 반가운 얼굴이 들어왔다. 크리스마스였다. 마찬가지로 또래의 남자와 손을 잡고 있었는데 어딘가 익숙했다. 크리스마스의 얼굴은 또렷이 봤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빼앗기던 나날의 손님이었을까. 시선을 내리다 남자의 왼팔에 타투를 보고 기억해냈다. 빼앗기던 나날의 손님 중에서도 많이 빼앗았던 손님이었다는 걸. 이미 취한 채로 들어와 맥주를 몇 캔 사고 밖이 추우니 기어코 안에서 먹겠다던 손님이었다. 속으로 저울질을 했다.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끝내 어울릴 수 없음을 깨닫고 이별을 통보하는 크리스마스의 얼굴을. 둘은 카스 두 캔과 오징어 숏다리 하나, 콘돔을 하나 샀다. 상품의 바코드를 찍다가 나는 당시 취한 채 행패를 부리던 남자의 일행이 크리스마스였다는 걸 떠올렸다. 배신감을 느끼다 나는 그때는 너무 취해서 '죄송했어요'라는 남자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문이 열리며 띠리링, 닫히며 띠리링 소리가 났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습관적으로 손가락을 계산대에 튀겼다. 약지-중지-검지 순으로. 땅. 땅. 땅. 나는 뭐 판사인가.
매주 토요일 저녁 언저리에 짧은 이야기나 시가 올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