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중 이상무

by 기묭


오전 근무가 있는 날엔 새벽 6시 반, 45분에 알람이 울린다. 늦어도 7시엔 집에서 출발해야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후 근무인 날에도 마찬가지로 새벽 6시 반, 45분에 알람이 울린다. 오후 근무라고 알람을 꺼뒀다가 오전 근무가 돌아오는 날에 혹시나 까먹고 알람을 맞추지 않는 상황이 오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 휴대폰은 매일 새벽 6시 반, 45분에 운다. 기우일까. 대개는 그렇겠지. 오전 근무일 경우엔 전날 밤 자기 전에 도시락을 싸서 냉장고에 넣어 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싸고 갈 자신은 없기에. 도시락을 싸고 다니지 않으면 지출이 많기에. 약간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약간보다는 조금 더한 수고로움이지만 지출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그러나 도서관에서 빌려 책을 읽겠노라 전입신고를 하고도 결국 어제 퇴근길에 책을 세 권 주문했다. 오후 출근이었고 나는 밤 12시에 퇴근했다. 강남역까지 15분 정도 걸어가 지하철을 탔다. 탔던 칸에 토사물이 있어 다른 칸으로 자리를 옮기다 통로에 멈춰서 등을 기댄 채 서서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데 책 속에 인용된 시가 너무 좋았다. 이거다 싶어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리고 싶었는데 책 속엔 시의 일부만이 인용되어 있었다. 나중에 책을 사게 되면 찍자며 공감받고 싶은 마음을 쟁여두었다가 참지 못하고 인터넷에서 시를 검색해 내용을 복사해 마침 안 자고 공부를 하고 있던 친구에게 시를 보냈다. 감상에 젖지 말고 감성에 젖자는 말을 덧붙였고 감상에 젖은 나는 알라딘 어플을 켜고 시집을 찾아 장바구니에 넣다가 장바구니에 이미 들어가 있는 다른 책들을 보다 오늘이다 싶어 책을 주문했다. 남은 8월 근무 중 오후 근무가 많아 택시비를 미리 책정해 빼두었는데 스케줄 조정으로 전부 오전 근무로 바뀌었기에 빼두었다 굳어버린 택시비로 산다면 남은 일정엔 차질이 없을 것이라는 여유가 한몫을 했다. 지출을 어느 정도 붙잡고 있되 너무 구애받지는 말자는 마음이다. 뒤에 형이 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여유일 것이다. 여차하면 빌려 쓰면 된다는 마음이 겉으로 보기엔 그럴듯하게 포장이 되나 보다. 군대 훈련소에서 동기가 자기소개서에 쓴 내 좌우명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를 보고 너답다며 근사하다는 듯이 포장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사실은 있으면 할 텐데 없으니까 어쩔 수 없지라는 방향으로 사용하는데 말이다. 누가 아냐고? 내가 안다. 포장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다는 걸. 몸이 무거워지는 건, 행동이 무거워지는 건 아마 포장지가 덕지덕지 붙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받지 않아도 되는 포장지를 구태여 받아 스스로 덕지덕지 붙여서 이쁘게 리본을 둘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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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감상에 젖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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