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에 나가는데 총을 두고 가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교과서를 두고 왔다. 나는 전쟁터에 나가는데 총을 두고 왔다. 그러면 맞아야지. 손바닥이 아팠다. 영화 <핵소 고지>를 본 적이 있는데.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 안 롯데시네마에서. 친구랑 같이 갔는데 친구는 K리그를 보러 갔고 나는 영화를 보러 갔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랬는데 영화 끝에 실제 인물 인터뷰가 나오기도 하고. 주인공은 종교적 신념에 의해 총을 들기를 거부한다. 거부한 채로 전쟁터에 들어가서 동료들을 구하는데. 감동적이었고. 나는 오른손으로 책을 꽉 쥐고 지하철로 들어서는데. 총일까? 총은 아닌 거 같은데. 내게 총이라면 이어폰을 귀에 꽂고 휴대폰을 보는 것일 텐데. 피난처라고 할까. 나는 무해한 사람이에요. 그렇지 않다면 그러고 싶어요. 그러니까 내버려 두세요. 지하철엔. 좌석에 앉아 오른쪽 발목을 왼쪽 무릎 위에 올린 채 다리를 떠는 남자 옆에 앉아서 나는 무심히 책을 읽는데. 시그널이에요. 읽어주세요. 말로 할 수 없어서 보내는 시그널이에요. 전쟁터에 가는데 총을 두고 가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시그널이에요. 코앞에 총구를 들이대도 그럴 수 있냐고? 어렵다. 어렵긴 한데도 말이야. 화장실을 다녀온 알바생이 충격적인 장면을 봤다며 말을 꺼냈는데. 화장실을 갔는데 어떤 사람이 소변기 앞에서 소변을 보는데. 농담 아니고 한 2미터는 멀찍이 떨어져서 소변을 보고 있었다고. 그러다 자기와 눈이 마주치자 눈치를 보며 앞으로 갔다고. 해괴한 광경이었다고 말을 해줬는데. 나도 생각나는 게 있어서. 내가 본 사람은 소변을 보는데 양손을 허리에 짚고. 두 발을 어깨 넓이로 벌린 채로 소변을 봤는데. 나는 그런 당당함이 차라리 부럽네. 그게 자연스럽다는 지점이 차라리 부럽네. 그런 사람도 있네. 종량제 봉투를 사러 마트에 갔는데. 십자가 귀걸이를 한 젊은 남자가 계산대를 보고 있었는데. 종량제 봉투도 파나요. 잠시만요. 묶음으로만 파는데 이게 섞여서요 개수 확인해 볼게요. 남자는 비닐뭉치의 개수를 확인하는데. 손이 건조한 지 자꾸 미끄러지자 남자는 계산대 옆에 놓아둔 물티슈에 손을 문지르고 다시 비닐을 셌는데. 손에 침을 묻히고 무엇을 세는 내 모습이 떠올라 나는 이 남자의 손짓이 퍽이나 인상 깊었는데. 마트의 지침인지 본인의 생각인지. 상식인지. 전쟁터에 총을 들고 나가든 두고 나가든. 굳이 전쟁터에 나가지 않아도 전쟁인데. 로제타는. 영화 <로제타>를 봤는데. 로제타는 일을 구하고 싶은데. 일을 하고 싶다고 밀가루 포대를 붙잡고 바닥에 엎드린 채 소리치는데. 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인가. 나는 뭔데. 내가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