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대답

by 기묭




자신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고 가정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에게 상처인 남자를 만났다.


최고가 될 자신은 없으니까요.

중간이면 안 되나요?

믿기 힘들겠지만 제겐 그것도 쉽지 않아요. 버겁습니다.

지치지 않아요?

전혀요. 오히려 편합니다.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비겁? 아니. 비굴하다고 느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상처 주고 상처 받고 후회하고 용서하고 당신에겐 이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요?

예, 제게는요. 제겐 일상 자체가 버겁습니다.


투정이다. 비겁한 변명이다.


겁쟁이의 투정으로 밖에 안 들리는데요.

예, 저는 겁쟁이입니다.

그만하세요. 그렇게 사는 게 행복하십니까?

이렇게 사는 게 행복하냐고요?

네.

당신은 제가 죽기를 바라시나요?

.아니요

저도 그렇습니다. 죽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서요?

어쨌든 이렇게라도 살아 있잖아요. 그걸로 됐습니다.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상담을 받아 볼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상담이요?

네.

어떤 고민에 대한 상담일까요.

글쎄요, 그건.

길을 걸을 때 모두가 나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 걸음걸이가 이상해지는 것에 대해서?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맛있다는 느낌을 못 받는 것에 대해서? 운전대를 잡고 있으면 온갖 사고에 대한 환상이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떠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오래 만났든 그게 누구든지 간에 설령 가족이라 해도 전혀 유대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상담이요? 이런 고민에 대한 상담을 말하시는 건가요?


버겁다.


버거운 고민이군요.

예. 버겁습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저는 괜찮으니까 그냥


인정해주십시오. 이런 저라도 당신의 일부니까요.

그런가요.

네, 아닌 척 말아요.


알겠어요. 인정할게요.

좋아요. 여기서부터 우린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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