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by 기묭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크게 외쳤다.

"다녀왔습니다!"

받아줄 사람이 없어 소리가 빈 곳을 돌다 다시 내게 메아리쳐 왔다.



단호한 얼굴로 나가라고 외치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이제와 그리울 줄은 몰랐다. 그러나 일찍 알았더라도 바로 돌아가진 않았을 것이다. 돌아간다 한들 선뜻 반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아버지와 나였다. 동네 사람들의 존경은 한 몸에 받으면서 아들의 존경은 받지 못했던 사람. 그 안과 밖의 격차를 머리로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반기를 들었고 나가라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 어머니에게 연락해 볼까 고민했었지만 끝내 하지 않았다. 나 혼자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걸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악착같이 공부했다. 돈도 없는 내가 기대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다. 몇 번의 실패를 겪고 나름 평판이 좋은 곳에 취직했다. 지켜야 할 건 내 몸뚱이 하나뿐이었기에 보살피고 남는 에너지는 오롯이 일에다 쏟았다. 남들보다 좋은 결과를 얻었고 빠르게 올라갔다. 내 곁에서 무언가 거대한 흐름이 지나가는 걸 느꼈다. 느낌이 좋았다.

물질적인 성공을 이루고 일상에 여유가 생기자 외로움이 찾아왔다. 세상 혼자라는 느낌. 죽기 전까지 혼자일 것 같다는 불안함.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불안도 지금의 아내를 만나자 이내 사그라들었다.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집에만 들어가면 완쾌였다. 아내는 의사였다. 몸도 마음도 겉도 안도 내겐 완벽한 의사였다.

흠잡을 데 없이 순조로운 나날을 보내던 때에 진부하게도 편지가 왔다. 아버지였다. 별 내용은 없었다. 가벼운 안부. 언제 한 번 집에 들르라는 말. 그러겠노라 다짐만 하고 답장은 하지 않았다. 빠른 시일 내에 직접 가서 내 성공한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직장 내에서 작은 문제가 생기고 아내의 출산 예정일이 다가오면서 방문은 조금씩 미뤄졌고 딸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완전히 잊혀졌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벅참과 감사함의 나날이 조금은 빛이 바랜 일상이 되었을 즈음 두 번째이자 마지막 편지가 도착했다.

TV 앞 소파에 앉아 편지를 꺼내 읽었다. 다 읽고 나서 한참을 누워있다 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읽었다.

고백록이었다. 시기와 질투의 기록. 그 기록의 고백.



"아들아. 난 네가 부러웠다.

난 너의 뚜렷함이 부러웠다. 내가 평생에 걸쳐 가지고 싶었던 걸 너는 일찍부터 가지고 있었지. 내가 내 아버지에게 할 수 없었던 말을 너는 네 아버지에게 할 수 있었다. 내가 남들과 대화를 할 때 네가 곁에 있노라면 속으로 나를 비웃고 있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네 눈을 마주 보고 있으면 내 좋은 평판의 기반이 주관 없이 여기저기 휘둘리는 내 나약함이라는 걸 네가 꿰뚫어 보는 것만 같아 마주하고 싶지가 않았다.

너의 젊음이 부러웠다. 고민하고 재느라 흘려버렸던 내 젊음이 아쉬워서. 먹고사는 게 급급했던 나와는 다른 환경이, 세대가 부러웠다. 흘러가버린 젊음에 대한 아쉬움이 현재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자부심으로 바뀌지 않았던 것은 내가 너를 인간적으로 질투했기 때문일 것이다. 네가 느꼈던 모든 게 다 여기서 비롯된 것 같다. 시기와 질투."


뒤이어 어린 시절의 일들에 대한 아버지의 속마음이 기록처럼 나열돼 있었다. 다시 한번 천천히 기억과 함께 따라 내려갔다. 오해가 풀린 것도 있었지만 아버지 혼자 오해한 것이 더 많았다. 당시 내 말투와 행동이 아버지에겐 그렇게 받아들여졌던 걸까. 편지 속 내 모습의 반 정도는 아버지 안에서 새롭게 재구성된 것 같았다. 너무 좋게 봐주었다. 나라고 다를까. 사회에 나가 이리저리 치이며 깎이고 깎이자 난 어느새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서랍을 열어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어린 시절의 나와 아버지. 그리고 거울을 봤다. 어느새 사진 속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다. 우린 서로 많이 다른 게 아니었는데. 아니 오히려 너무 닮아서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을 아버지에게서 볼 때 '단점도 닮았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더 싫었었다. 닮았기에.

바로 얘기했으면 일찍 알았을 텐데 서로 멀지 않다는 걸. 결국 끝까지 서로의 오해를 풀지 못했다.




'꿈이구나'

눈을 떴다. 내 뒤척임에 구겨진 편지가 오른쪽 어깨 밑에 깔려있었다. 편지엔 사실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첫 번째 편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왜 그런 꿈을 꿨을까. 바랬던 걸까.

실제로 편지 내용이 꿈에서와 같았다고 해도 일찍 돌아가진 않았을 것이다. 돌아간다 한들 선뜻 반기지 않았을 것이다. 바보 같지만 그게 아버지와 나다. 서로 너무나 닮은 부자다. 굳이 표현하지 않는 이유는 이렇다. 속으로는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으니까. 난 아버지를 닮았으니 아버지도 속으론 나를 생각하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넘겼다. 결국 끝까지 서로의 오해를 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꿈이라는 환상 속에서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꿈속의 불안이 현실이 되었을 때. 현관에 서 메아리쳐 돌아오는 내 목소리를 듣고 있는 지금. 나는 생각한다.


'일찍 올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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