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별 기대 없이 펼친 책에서 기념비적인 이야기를 발견했을 때, 나는 산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느낀다. 이 책이 그렇다.”
이 글은 그래픽 노블 “사가”에 대한 허지웅 작가의 추천글이다. 나는 이 추천글을 그대로 ctrl+c해서 이 책 표지에 ctrl+v하고 싶다. 내 마음이 그렇다.
<목소리의 형태>는 고개 숙인 한 소년 이시다 쇼야가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뉘우쳐서 다시 고개를 들고 똑바로 앞을 보게 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 왕따 가해자였던 이시다는 자신이 피해자가 되고 나서야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걸 깨닫는다. 친구들과의 관계는 엉망이 돼버렸고 이시다는 고립된다. 관계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한 이시다는 자살을 결심하고 달력의 표시한 마지막 날을 기다리며 끝내지 못한 일들을 마무리 짓는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모아두었던 돈을 모두 뽑아 '돈 갚을게요.'라고 적은 봉투에 넣어 엄마에게 남겨놓는다(어린 시절 엄마가 대신 갚았던 보청기 값 170만엔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시다는 자신이 괴롭혔던 소녀 니시미야 쇼코를 만나러 간다. 자신의 잘못을 똑바로 보고 제대로 사과하기 위해.
어린 시절
'나는 따분함이 질색이다.'
어린 시절의 이시다는 대모험!을 모토로 사는(기억을 되짚어 보면 우리 주변(혹은=)에 으레 존재했던 그런) 아이였다. 이시다는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것들엔 도통 관심이 없다. 간디가 어떤 사람인지. 인류의 진화과정이 어떻다든지. 수조 안에 들어 있는 물이 양동이 몇 개 들이라든지 &?$#@!
이시다는 따분함에 지지 않기 위해 강렬한 경험만을 쫓는다. 주로 하는 일은 친한 친구 둘(시마다와 히로세)과 함께 스스로 담력시험이라 이름 붙인 개울가 다이빙을 하는 것이다. 이시다는 그렇게 매일 조금씩 따분함에게 승리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시다와 달리 친구들은 점점 이 치기 어려 보이는 담력시험이 내키지 않는다. 결국 시마다는 학원을 더 이상 빠질 수는 없다며 불참을 선언하고 히로세는 좀 더 안전하고 유익하게 시간을 쓰자며 담력시험을 폐쇄할 것을 간언 한다. 이시다는 위기감을 느낀다.
'이대로 가다간 따분함에 져버릴 거야.'
인생은 따분함과의 싸움이라던 이시다의 누나가 서른 한 번째 남자 친구인 근육 빵빵한 브라질 사람 페드로를 만날 즈음 이시다에게 새로운 모험이 등장한다.
이시다의 반에 청각장애를 겪는 소녀 니시미야가 전학을 왔다. 니시미야는 이시다의 앞자리에 앉는다. 이시다가 뒤에서 작게 미소 짓는다. 불안하다. 니시미야는 필담 노트를 통해 반 아이들과 글로써 소통하려 한다. 처음엔 순조롭게 적응하는 듯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틈이 벌어진다. 니시미야 때문에 수업은 끊기기 십상이고 합창대회는 필패가 불을 보듯 뻔했다. 니시미야를 도와주던 친구들도 조금씩 지쳐갔다. 니시미야는 수업에서도 관계에서도 점점 뒤처져 갔다. 잠잠히 니시미야를 관찰하던 이시다는 스스로 납득한 후 결론(사실상 사형선고)을 내린다.
'녀석은 이질적인 문화 환경에서 자란 외계인일 뿐만 아니라 우리 반에 해를 끼치는 방해꾼이다.'
이시다에게 니시미야는 ≠였다.
이시다는 니시미야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시다를 필두로 한 친구들의 온갖 괴롭힘에도 니시미야는 전혀 화를 내지 않는다(화 낼 줄을 모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지만 화 낼 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화를 내거나 울거나 하는 정상적인 반응을 기대했던 이시다는 화를 내지 않는 니시미야에게 더욱 흥미를 느낀다(이시다가 흥미를 느껴할 때 민달팽이에 소금을 뿌리는 장면이 나온다 - 짜증 난다). 니시미야가 순종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면 괴롭힘 당하지 않았을 거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그건 부당해 보인다. 처신을 똑바로 했어야 했다는 얘길 들어야 하는 건 피해자가 아니다.
5개월 간 분실하거나 고장 난 보청기가 여덟 개. 니시미야의 엄마는 자기 딸이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것 같다고 학교 측에 문제를 제기한다. 교장선생님이 이시다의 반에 들어가자 곧 진상이 드러났다. 그리고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한다. 담임선생님은 가장 튀었던 이시다 한 명을 꼽았고 괴롭힘에 어울렸던 친구들은 이시다가 주도했다고, 자기들이 보기에도 너무 심하다고 생각한다며 슬쩍 발을 뺐다. 그리곤 이시다를 향한 괴롭힘이 시작됐다. 친구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선을 그었다. 이시다 = 왕따 가해자였고 친구들은 이시다와 =일 수는 없었다. 선은 하나로 족했다. 친구들에게 이시다는 ≠였다.
이시다는 자신이 니시미야와 같은 처지가 되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니시미야가 떠난 후 이시다는 아주 뒤늦게 뼈저리게 후회한다.
똑바로 봐야 한다
보기 싫어도 똑바로 봐야 한다. 아직 볼 수 있을 때 제대로 봐야 한다. 나중에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 시야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리면 그땐 제대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 그러니 볼 수 있을 때 봐 두어야 한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렸을 때에 결과는 대체로 처참하다.
<목소리의 형태>는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일들을 상기시켰다. 작품 속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가 겪었던 그리고 보았던 어린 시절과 많이 다르지 않다. 이시다, 니시미야, 우에노, 카와이, 시마다, 히로세는 만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다. '어렸을 때니까, 미숙했을 때니까 어쩔 수 없었을 지도.'라는 생각이 잠시나마 머물렀던 것은 나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어서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우리는 많이 미숙했고 그래서 더 잔인했다.
우리는 각자 하얀 도화지를 하나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무엇을 그리든 그것은 그리는대로 그려졌다.
가령 TV 드라마 '야인시대'가 방영된 다음날은 으레 폭력사태가 일어나기 십상이었다. 어디서 보고 배웠는지 후배들에게 돈을 상납받던 아이도 있었다. 학년마다 반마다 이파 저파 계파주의에 패권주의가 만연했고 서로에게 던지는 말과 행동들은 다분히 정치적이었다. 어린 시절의 우리는 그저 하얀 도화지를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면죄부가 되어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이시다는 잘못된 그림을 그렸었다. 그러나 아무도 바로잡아 주는 사람이 없었다. 담임은 그 그림을 보고도 모른 채 했다. 니시미야를 놀리는 이시다를 보게 된 담임은 이시다를 데려다가 꾸짖었다. 윤리문제이기에 그래선 안된다고 얘기하지만 이시다는 이해하지 못한다. 설명하기 귀찮은 듯 담임은 이렇게 얘기한다. "좌우지간, 세상엔 어쩔 수 없는 게 있는 법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이시다는 혼자 고민하고 반문한다. 가르쳐 주느라 힘이 들고, 수업이 지연되고, 합창이 엉망이 되는 게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이 모든 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반에 피해를 끼치는 니시미야가 싫은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시다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 날. 니시미야를 괴롭히던 이시다는 또다시 교무실로 불려 간다. 담임은 등을 보인채 돌아보지도 않고 귀찮다는 듯이 말한다. 일부러 그랬든 안 그랬든 그런 건 알 바 아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다 자기 책임이니까 그런 줄 알아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 얼굴에 먹칠하지 말라는 것뿐이다. 그리고
"하지만 뭐, 네 심정은 알겠다." 이시다는 인정받았다. '뭐야, 선생님도 알고 있네. 이렇게 된 건 어쩔 수 없는 거라는 걸.'
담임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시다의 죄가 가벼워질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답답하다.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사건에 얽힌 인물들에 대해 알면 알수록 명확해 보였던 선과 악은 흐릿해진다.
다만. 이시다는 서툴지만 자신의 잘못을 똑바로 봤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니시미야와 제대로 대화하기 위해 수화를 배우고 자신이 빼앗아버렸던 것들을 돌려주기 위해 노력한다. 일단은 자신의 잘못을 똑바로 마주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용서를 구하는 건 그다음이다. 선과 악이 흐릿해진다고 해서 자신의 잘못도 흐려지는 건 아니다. 본인은 잘 보이고 잘 알고 있다. 다만 보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마냥 어둡기만 한 내용은 아니다. 유머도 있고 따뜻함도 있다(그리고 꽁냥꽁냥도 있다). 기본적으로 작화가 훌륭해서 보는 맛이 있는 데다 내용과 연출까지 좋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내용도 이게 다가 아니다. 작품 속엔 여기엔 쓰지 못한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기회가 된다면 다들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이 만화는 작년에 일본에서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도 했다(현재 국내에서 상영 중이다). 며칠 전 혼자 보고 왔는데 개인적으로는 쪼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2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압축하려다 보니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을 움직이기엔 충분했다. 애니메이션이 마음에 들었다면 원작도 한 번 찾아보기를 권한다. 원작은 좀 더 넓게 주변 인물들도 조명하기에 다양한 캐릭터들의 내면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목소리의 형태 1~7권. 오이마 요시토키. 출판사 대원씨아이. 값 5,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