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과거를 보다
매주 토요일, 명상 수업을 듣고 있다. '인사이드 무비'라는 테마로 진행되는 수업이다. 이론적인 설명이 끝나면 명상을 한다. 적당한 긴장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자세를 잡고 눈을 감는다. 천천히 숨을 쉰다. 검은 화면. 머릿속에서 스크린을 띄우고 영사기를 돌린다. 스크린에 과거의 장면들이 투사되고 나는 장면들을 관찰한다. 몇 번이나 봤던 장면들이지만 집중해서 다시 본다. 시간의 순서와 관계없이 들쑥날쑥 기억들이 섞인다. 그래도 그냥 본다. 애써 바로잡으려 하지 않고 떠오르는 대로 그냥 본다.
과거는 결과값(output)이라고 한다. 이미 일어난 일들로부터 도출된 결과값.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순 없다. 없던 일로 만들 수도 없다. 과거의 결과들의 총합이 지금의 나다. 지금의 내가 마음에 안 들어도 별 수 없다. 지금의 내가 되도록 나는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변화를 주고 싶다면 과거를 제대로 봐야 한다. 제대로 보면 알게 된다고 한다. 알게 되면 하게 된다고 한다. 내가 지금껏 하지 않은 것은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이건 조금 의문이 든다고 한다). 변하고 싶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미래를 생각해 본다. 나는 어떤 삶을 꿈꾸는가. 나는 어떤 내가 되고 싶은 걸까.
일단 커다란 방향성을 정한다. 그리고 과거를 통해 내 삶의 패턴을 확인한다. 내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패턴을 변화시켜야 할 것 같다. 그럼 무엇을 넣어(input)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패턴이 바뀔까. 어떤 경험이 필요 한가. 해답은 과거에 있다. 과거를 제대로 보고 그 속에서 미래의 실마리를 잡아야 한다.
말은 쉽다. 사실 잘 모르겠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 걸까. 내가 되고 싶은 내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정말 될 수 있는 걸까.
나는 변할 수 있는가.
나는 아직 변할 수 있다
최근, 뇌과학책 <더 브레인>을 읽었다. 명상 수업과 통하는 부분이 많아 신기했다. 즐겁게 읽었다. 쉽고 재밌게 잘 쓰인 책이다.
책은 말한다. 당신이 누가 될지는 당신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인간은 미완성으로 태어난다.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놀랄 만큼 독립적인 우리의 친척들(태어나면서 헤엄치는 돌고래, 생후 45분 안에 달릴 수 있는 새끼 얼룩말 등)과 달리 우리는 무력하게 태어나 철저히 주위 사람들에게 의존한다. 동물들의 독립성은 커다란 장점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한계이기도 하다. 새끼 동물들이 빨리 발달하는 건 녀석들의 뇌가 주로 미리 정해진 절차에 따라 회로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융통성 없음을 의미한다. 동물은 '고정 배선' 상태로 태어나지만 인간은 '생후 배선' 된다. 인간은 미완성된 상태로 태어나 서서히 환경에 적합한 모습을 갖춘다.
갓 태어난 아기의 뉴런들은 서로 이질적이며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생후 2년 동안 감각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뉴런들이 엄청나게 빠르게 연결되기 시작한다. 아기의 뇌에선 매초 200만 개의 새로운 연결(시냅스 형성)이 일어나고 두 살이 되면 약 100조 개가 넘는 시냅스를 지니게 된다. 이 개수는 성인이 가진 시냅스의 두 배다. 우리가 자라는 동안 우리의 시냅스는 50퍼센트나 감축된다.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저자는 '가지치기'라고 표현한다. 성공적으로 참여하는 시냅스는 강화되고 불필요한 시냅스는 약화되다 결국 제거된다. 숲 속의 오솔길들처럼 사용되지 않는 연결들은 소멸한다. 내가 지금의 내가 된 것은 내 뇌 속에서 무언가가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가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25세 정도가 되면 뇌 형성이 완료된다고 한다. 정체성과 성격에 관한 구조적 변화들은 이미 끝났고, 우리의 뇌는 완전히 발달한 것처럼 보인다. 성인이 된 나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고정되어 버린 것일까. 다행히 우리의 뇌는 계속 변화한다. 어떤 대상이 다른 모양으로 바뀔 수 있을 때(또한 그 모양을 유지할 수 있을 때)그 대상은 가소성을 가진다고 하는데 우리의 뇌는 가소성을 가지고 있다. 경험은 뇌를 변화시키고, 뇌는 그 변화를 보존한다.
변할 수 있다. 변하고 싶다면. 경험을 통해 놔를 변화시킬 수 있다. 필요한 경험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욕구를 알아야 한다. 나는 어떤 미래를 꿈꾸는 걸까. 도대체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 걸까.
내가 어떤 내가 될지는 나에게 달려있다. 계속되는 고민.
책임감을 가지고 깊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나는 어떤 내가 되고 싶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