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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커넥트 Nov 15. 2019

폐그물로 만든 재생 나일론

[파랑이앤알]

쓰레기로 바다 또한 육지 못지않게 몸살을 앓고 있다. 해양 생물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 해양 사고 발생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바다 쓰레기. '파랑이앤알'은 그중 폐그물에 주목한 스타트업이다. 폐그물을 처리하는 파쇄기를 개발해 재생 나일론을 추출하고 연료용 펠릿을 생산하는 등 환경을 위한 자원의 선순환을 도모하는 혁신기업이다. 




연간 배출되는 폐그물 4만 5천 톤의 진실 


해양 쓰레기의 심각성은 해양 생물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뿐만 아니라 선박을 포함한 각종 해양 사고의 발생률에 결코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 그중 바다에 버려지는 폐그물의 경우 매년 바다 연안에서 수거하는 양이 4만 5000톤에 달한다. 정부는 예산을 들여 이를 수거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폐그물을 바다에서 끌어올려 뭍으로 옮긴 후 이렇다 할 처리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폐그물은 대부분 방치되거나 불법 투기된다. 이러한 ‘문제적’ 폐그물로 재생 나일론을 만드는 해양 폐기물 전문 처리 기업 ‘파랑이앤알(PARANG Environment & ecycle)’의 박성근 대표는 말한다. “어민이나 양식장에서 쓰는 그물이 수명을 다하면 폐기하는데, 국내의 경우 사용자가 처리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에요. 그리고 대부분은 그물을 바다에 그냥 버리는 것이 현실이죠. 벌금을 내기도 하지만, 이에 대해서 감시나 규제를 엄정하게 하는 건 아니에요. 바다에 버려진 폐그물에 감겨서 죽는 치어가 국내 어획량의 10% 정도랍니다. 물론 피해는 어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가죠. 단순히 피해를 입는 정도가 아니라 낚싯배나 물류 선박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고요. 이미 바다 밑에 가라앉은 그물은 측정하기 어려울 만큼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해양수산부를 거쳐 계약한 업체가 이런 해양 쓰레기를 수거하는데, 연간 처리하는 양이 4만 5000톤이에요. 생활 쓰레기보다 해양 쓰레기의 양이 적을지 몰라도 정작 문제는 해양 쓰레기에 대한 처리 방식이 따로 없다는 데 있어요. 이건 정말 위험한 문제입니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죠.” 박성근 대표는 해양 쓰레기 문제를 파고들며 결국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는 바닷속으로 폐그물이 가라앉는 것뿐만 아니라 점차 부식되는 현상을 주목했다. “폐그물이 마이크로 나노 단위로 녹슬게 되는데, 물속에서 작은 조각이 반짝거리기도 해요. 수중의 플랑크톤이 그걸 먹고, 그다음 상위 포식자인 생선이 플랑크톤을 먹죠. 그 생선은 사람이 먹고요. 그렇게 해서 우리 몸에 미세 플라스틱이 쌓일 수 있는 것이죠. 미세 먼지만 걱정할 일이 아닌 거예요. 몸에 쌓이게 되는 미세 플라스틱에 대해 이제부터라도 생각해야 합니다. 심지어 우리 몸에 미세 플라스틱이 쌓이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연구 자료가 아직 없어요. 어쩌면 이미 피해자가 양산되었을 상태인지도 모르는 것이고요.” 치명적인 위험에 대한 인식은 파랑이앤알의 걸음에 속도를 더했다. 



통찰력으로 찾아낸 틈새시장


박성근 대표의 전직은 눈길을 끌 수밖에 없는데, 환경 관련 스타트업을 이끌기 전 그는 음반 제작과 드라마 제작 등 대중문화 분야에 오래도록 몸담았다. 접점을 찾아볼 수 없는 전혀 다른 분야로의 진입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사실 폐기물을 활용한 사업 분야를 생각하게 된 건 불순한 계기 때문이에요.(웃음) 우연히 지인을 통해 물류 산업에서 일을 해볼까 하던 차였어요. 그러다가 물류를 운반할 때 반드시 쓰는 (화물 운반용) 팔레트를 접했어요. 팔레트를 제조하고 공급하는 사업을 준비하던 중 팔레트 제조의 기본 원료가 플라스틱의 하나인 PE(폴리에틸렌)인데, PE 공급이 중요한 분야더라고요. PE를 직접 생산하면 단가를 낮춰서 팔레트를 제작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PE 플라스틱이 있는 곳, 특히 재활용 계통으로 알아본 거죠. 기존 시장은 이미 자리를 잡은 상태였으니 새로 시작하는 거라면 남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틈새시장을 노려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PE 원료를 줄곧 고민하다가 폐그물을 접했다. 방치되어 있기 일쑤인 데다, 누구나 기피하는 그 폐그물이었다. 여기서 플라스틱의 원료를 추출할 계획으로, 파쇄기를 찾아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결국 마땅한 파쇄기를 찾지 못해 직접 만들게 되었고, 2년여의 기계 개발을 거쳐 테스트와 허가까지 마쳤다. 그리고 드디어 파랑이앤알의 파쇄기는 올가을 본격적인 출시를 앞두었다. “폐그물에서 플라스틱 원료를 추출하는 과정은 기존 방식대로라면 다수의 인력이 투입돼서 수작업으로 분리해야 해요. 폐그물을 바로 가져오면 상태가 아주 엉망이거든요. 부표에서 나온 스티로폼이 붙어 있다거나 그물에 달린 추에서 나온 납이나 철 소재의 조각이 마구 엉켜 있어요. 개펄에서 쓰는 

그물이 많은데, 그럴 때는 그물에 흙이나 따개비가 붙어 있곤 하죠. 그런데 파쇄기를 거치면 인력 없이 바로 분리와 추출 작업이 가능해져요.”


파랑이앤알 박성근 대표

재생 플라스틱의 무한한 의지


2018년 중국의 쓰레기 수입 중단 이후 많은 나라가 타격을 입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박성근 대표는 폐기물을 통한 원료 추출을 목적으로 파쇄기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파랑이앤알의 설계에는 재생 나일론을 추출하는 데서 나아가 이것으로 또 다른 재생 에너지의 원료를 만드는 것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인력을 투입하지 않고 기계를 거쳐 폐그물을 파쇄하고 원료를 선별·추출하는 것이 가능해졌죠. 2016년부터 파쇄기 개발에 매달렸어요. 그런데 기계 설비 제작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오히려 파쇄기를 통해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정리하는 데 가장 긴 시간이 소요되었죠. 하늘 아래 새것은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파쇄기는 파랑이앤알의 목적과 쓸모에 맞춰서 기존의 부품을 골라내서 조립한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올해 5월 업사이클링 혁신 기업 파랑이앤알은 와디즈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투자형 펀딩을 진행했다. 펀딩 목표 금액 5000만 원으로 시작해 2시간 만에 ‘완판’되었을 뿐 아니라 달성률 110%를 기록하며 최종 금액 약 1억 8000만 원으로 마감됐다. 박성근 대표에게 와디즈를 통해 파랑이앤알을 소개하는 일은 투자금을 마련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해양 쓰레기를 수단으로 삼은 사업의 가능성을 제안했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얼마나 관심을 가질까, 하는 것이 가장 궁금했어요. 물론 저는 이미 확신을 갖고 있는 일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걸 보고 과연 투자를 할까, 반응을 보일까,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펀딩 금액이 목표액을 훌쩍 넘기니 힘이 났습니다. 이 일을 하기 전에 음반이나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터득한 게 있어요. 중립을 지키고 객관적으로 보는 것에 어느 정도 훈련이 되어 있는 편이죠. 파랑이앤알이 개발한 기계로 다른 생활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폐그물로 한정하는 이유는 폐그물을 처리하는 솔루션이 없기 때문입니다. 

폐그물이라는 분야를 제대로 감당한다면 우리 역할을 충분히 해내는 거라고 봅니다. 파랑이앤알과 같은 스타트업이나 다른 기업이 업사이클과 관련해 일을 도모한다면 정부 부처나 관계 기관에서 더욱 열심히 바다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그렇게 이 시장의 파이가 커가는 그림을 꿈꿉니다.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진짜 방법을 찾는 것이죠. 그리고 그 방법으로 이익을 거두는 사업 모델이 생겨난다면 여기서 얼마든지 경제가 

생겨나고 활성화될 거라고 생각해요.”


제주로 회사를 옮길 계획을 밝힌 파랑이앤알은 재생 나일론 소재로 펠릿을 만들고 있으며, 재생 플라스틱으로 선글라스 등 상품을 만드는 일도 병행하고 있다. 박성근 대표에 따르면 파랑이앤알에서 생산하는 플라스틱 펠릿은 연료로 쓰는 경우(100g 연소 시 발생하는) 평균 열량 8000~1만 2000kcal로, 기존 펠릿(3000~6000kcal)에 비해 고효율이다. 참고로, 고효율 펠릿은 대부분 수입산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게다가 재생 나일론의 영역은 무궁무진한데, 특정 상품군으로 국한할 수 없을 만큼이며, 파랑이앤알은 재생 나일론으로 선글라스를 만든다. “(사업이) 될까 하는 의구심은 있었지만 하지 말까, 하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제 명함에 직책이 드리머(dreamer)로 기재되어 있어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제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속적으로 사람들에게 왜 이 사업을 하는지, 앞으로의 비전이 무엇인지에 대해 미끼를 던졌고, 지금까지 이끌어왔어요. 

앞으로도 제가 하는 일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겁니다. 지금껏 그래 왔듯 재미난 일을 재미나게 할 계획입니다.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는 것 역시 기업이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이니까요.”

 



*J-CONNECT 매거진 가을호(Vol.11)의 내용을 온라인에 맞춰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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