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가 일궈온 기업을 이어받는 사례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여기, 그 일반적인 범주에서 살짝 벗어난 남다른 승계 이야기를 지닌 사람들이 있다. 어업과 수산업에서 근면 성실히 일하던 부모님을 따라 동종 업계에서 자신의 감각과 재능을 발휘하거나, 가치와 미감을 전하는 예술에 헌신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작가의 길을 걷고, 부모님의 공장 부지에 재생 건축을 접목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사례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가업을 승계하고 혁신을 불어넣는 이들을 만나본다.
고희의 아버지가 한림항 새벽 시장에서 생선을 들이면 아들은 온·오프라인 주문 포장과 배송, 마케팅을 담당한다. 탄탄한 분업화 덕분에 아들은 한림 로컬들이 즐기던 달고기와 접목한 새 스낵을 출시할 수 있게 됐다.
신제주한림수산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운영하는 기업이다. 아버지 조광래 대표는 1997년부터 연안 부두에서 일하다가 국내 수산업의 한 축인 한림항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제주에 입도했다. 아들 조현희 대표는 2012년 제주 별미인 딱새우를 온라인 마켓에 처음 소개하며 전국 유통의 물꼬를 텄다. 매달 온라인 주문은 1500건, 지난해 매출은 월 1억 원에 달한다. 신제주한림수산의 최근 관심사는 도내에서 버려지는 새우와 달고기 부산물로 만드는 스낵이다. 수산업계의 진화를 내다보는 이들 부자는 위기를 기회 삼을 줄 아는 혜안을 대물림했다. 이들은 원물 중심의 기존 수산업에서 가공 상품 시장으로의 발돋움을 통해 제주 수산물의 부가가치 창출을 꾀하고자 한다.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Edge 9기 기업으로 활동했어요.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참여한 교육 프로그램은 실무에 아주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전에 자영업자로 10년 이상 일했지만, 세무와 회계, 마케팅 등을 직관에 의존해 진행했거든요. 센터에서 업무 공간을 지원받고, 체계적인 수업을 들으면서 업무에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유일무이한 수산 분야 참여자로 특별한 관심을 받게 돼 만족스러웠습니다.
연안 부두에서 일했던 아버지로부터 신제주한림수산이 뿌리내렸는데요.
아버지는 1990년대 조개류 유통 판매업을 했습니다. 이후 오사카로 건너가 규모 작은 호텔을 열었어요. 그러던 중 2011년 발생한 지진으로 고국에 돌아왔습니다. 아무 연고 없는 제주에 왔고, 입도 초기 수협 인근 시장에서 조기를 팔았어요. 비싼 참조기 대신 파조기라고 그물 작업하다 비상품이 된 조기를 판매했죠. 그러다 주변 상인의 텃세가 심해 온라인으로 판로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서럽던 그날이 없었더라면 아마 지금도 거기서 장사하고 있을 거예요.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건 어떤가요?
칠순을 넘긴 아버지는 죽는 날까지 일할 거라고 말하는 분이에요.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점은 아버지를 닮았어요.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서로 할 수 있는 일을 맡아서 했고, 현재의 분업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버지는 매일 새벽 시장에서 사입하고, 저는 온라인 판매와 마케팅 업무를 맡아서 합니다. 수산업은 변화무쌍하다는 점에서 저와 잘 맞아요. 어느 해에는 조기가 풍년이다가, 다른 해에는 아예 안 보여요. 어종이 매번 바뀌기 때문에 ‘오늘은 뭐가 나올까’ 하고 기대하게 됩니다. 예측불허의 상황을 즐기는 거죠.
오픈마켓 최초의 딱새우 판매는 어떻게 이뤄졌나요?
우연히 제주의 식당에서 ‘해물뚝배기’에 든 딱새우를 먹었는데 너무 맛있더라고요.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파는 곳이 없었습니다. 2012년 하나로마트에서 딱새우를 사서 사진을 찍고 판매 글을 올린 게 시작이었죠. 옥션 사이트에 게시물을 올린 지 열흘 만에 첫 주문이 들어왔어요. 나중에 고객층을 파악해보니 제주에서 딱새우를 맛본 여행자들이었습니다. 결정적으로 2018년 7월 20일 <효리네 민박>에 딱새우 라면이 나온 뒤로, 평소 10~20개 되던 주문이 300개 가까이로 늘었습니다. 한번 주문한 이들이 지속적으로 재구매하면서 저변이 넓어졌어요.
온라인 시장과 흐름을 읽는 건 훈련받은 건가요?
대학 시절부터 용돈 벌이로 온라인 거래를 했어요. 결국 학업이 뒷전이 될 만큼 사업 규모가 커졌죠. 아버지가일본에 있을 때 저는 아넷사 선크림 같은 공산품을 온라인에서 판매했어요. 다른 일화로는 갈치도 있어요. 온라인상에 냉동 갈치밖에 없는 걸 알고, 생물 유통이 까다로웠지만 판매를 결심했습니다. 사실 육지 배송을 위해선 맛 좋은 걸 얼리는 방법이 간단하죠. 하지만 생갈치는 여태 먹은 게 뭐였나 싶게 맛이 좋거든요. 당일 새벽에 들여온 갈치를 익일 배달하는 시스템으로 판매합니다. 몇 년간 갈치 상품에 대한 클레임은 거의 없었고,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새 상품을 야심 차게 개발 중이라고요.
수요가 없는 달고기 껍질이나 새우 대가리 같은 부산물을 가치 있게 활용해보고 싶었어요. 싱가포르에선 생선 껍질을 튀긴 피시 스킨 스낵이 특산물이잖아요. 코로나19 사태 이후 주문이 늘어 포장 업무가 많지만, 틈틈이 튀김을 연구했습니다.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에 수산물 가공 전문가 컨설팅을 요청하기도 했고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매달린 결과, 얼마 전 상품화를 위한 큰 진전을 이뤘어요. 곧 로컬에서 영감받은 한림산 스낵을 선보일 겁니다.
수산업 분야 예비 창업가와 젊은 세대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수산업은 규모가 크지만 낙후된 시장이에요. 일례로 갈치와 옥돔 포장지를 들 수 있는데, 1990년대 쓰던 재질과 제작 방식을 고수하고 있죠. 수산업은 할 일이 많지만, 인력이 없어요. 수산에 인생을 걸 만한 패기 있는 젊은 세대를 기다립니다.
신제주한림수산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고등어나 갈치처럼 익숙한 생선 말고, 저렴하고 맛 좋은 생선을 소개하고 싶어요. 상자에 조리 설명서를 첨부하는 식으로 디자인을 가미하거나, 가정 간편식(HMR)을 개발할 겁니다. 무엇보다 시니어 고용과 경력 단절 여성 고용을 확충하고 싶습니다. 강한 책임감과 노하우를 갖춘 위 세대, 능력치 높은 동료와 공존한다는 건 회사의 동력이니까요. 우리의 사훈은 ‘100년기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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