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가 일궈온 기업을 이어받는 사례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여기, 그 일반적인 범주에서 살짝 벗어난 남다른 승계 이야기를 지닌 사람들이 있다. 어업과 수산업에서 근면 성실히 일하던 부모님을 따라 동종 업계에서 자신의 감각과 재능을 발휘하거나, 가치와 미감을 전하는 예술에 헌신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작가의 길을 걷고, 부모님의 공장 부지에 재생 건축을 접목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사례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가업을 승계하고 혁신을 불어넣는 이들을 만나본다.
바닷가 마을 종달리에는 극장식 레스토랑이 있다. 젊은이들이 해녀 콘텐츠를 기획하고, 물질을 업으로 삼던 해녀가 배우가 되어 색다른 면모를 선보인다.
종달리의 옛 활선어 위판장을 개조해 무대를 만들고, 해녀가 배우가 되어 공연을 펼치며, 지역 어촌계에서 공급받은 해산물로 음식을 만든다. 해녀와 해산물을 주제로 탄탄한 콘텐츠를 만든 이는 제주 출신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한 김하원 대표다. 가족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해 수산물에 관심이 깊었고, 연기를 전공한 덕에 해녀 콘텐츠에 접근하는 방식이 남달랐다. 3년간의 준비 끝에 2019년 문을 열었고, 오픈 1년도 채 안 돼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소셜벤처 지원 사업 ‘낭그늘’ 임팩트 투자를 통해 15억 원 상당의 미래 가치를 인정받았다.
2017년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입주 기업 4기로 활동했습니다. 스타트업으로서 어떤 부분이 도움됐나요?
예술을 전공한 터라 사업적 지식이 전무했어요. 사업 아이디어를 더욱 고도화할 수 있도록 전문가들에게 컨설팅을 받았습니다. 관련 업계 종사자들을 소개받고, 같은 시기에 시작한 스타트업 대표들과 네트워킹하며 연결점을 만들어나갔죠. 여러모로 성장하는 발판이 됐습니다.
해녀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증조할머니, 친할머니, 고모가 해녀예요. 어머니는 제주 톳으로 가공식품을 만들고, 아버지는 공공기관에서 해녀를 위한 정책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가족 일을 돕다 톳이 헐값에 팔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일본 톳 시장 규모가 2000억 원이고, 한국산이 50%를 차지하는데, 자연산임에도 양식으로 분류돼 제값을 못 받더군요. 해녀의 수입원 70%에 해당하는 뿔소라도 같은 처지였고요. 양식 전복이 1kg에 2만7000원인데, 자연산 뿔소라는 1kg에 2700원이에요. 모두 제주에서 나지만 한국인은 잘 모르는 해산물이라 일본에 납품할 수밖에 없고, 이를 아는 일본은 단가를 계속 낮추는 거죠.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나섰어요. 젊은 사람이 뜻을 보태면 홍보는 물론 다양한 판로를 개척할 수 있으리라 봤습니다.
시장조사를 통해 알게 된 해산물 홍보과 판로 개척의 문제점은 어떤 것이었나요?
그동안 제주도청과 제주 어촌 관계자들이 해녀의 주 수입원인 뿔소라 홍보를 위해 많은 자본금을 투입했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얻지 못했습니다. 실패의 이유를 두 가지로 봤어요.하나는인지도부족으로,이는제대로브랜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또 하나는 1차 생산자의 보수성입니다. 육지 사람이 와서 어떤 일을 시도하거나 해외 혹은 육지 자본이 들어온다고 하면 주민들 사이에 반감이 일어요. 제주에서 나고 자란 내가 해야 될 일이라는 의식이 생겼습니다.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있었고요.
연극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할 수 있었을 텐데, 다이닝까지 접목했지요.
20년 된 어판장을 개조해 만들었는데, 공간을 활용해 수익을 내는 구조를 궁리했죠. 할 수 있는 건 공연이지만 사업성으로 보면 아쉽고, 여행자에겐 맛집 투어가 인기를 끄니 공연과 맛집을 접목해보자 싶었어요. 미국의 한 레스토랑에 대한 이야기도 들은 참이었죠. 브로드웨이 배우 지망생들이 운영하는 식당을 무대로 공연하고, 음식을 낸다는 거예요. 교수님께 자문을 구하고, 학교 선후배들과 의기투합해 시나리오부터 음향, 조명, 안무 등을 전담할 팀을 꾸렸습니다.
옛 어판장을 활용하기 위해 종달리 어촌계의 허락을 구해야 했겠어요.
마을 해녀와 어부 전체의 동의를 얻어야 공간을 비울 수 있었어요. 어촌계에 신뢰를 주고자 노력했습니다. 경조사에 참여해 일을 돕고, 새벽 조업에 따라가 손을 보태거나, 마을의 일손을 자처했죠. 로컬에서 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처럼 토착민과 관계를 맺는 일입니다. 마을 사람들을 위한 일임을 진심을 다해 알려야 하죠. 이렇게 신뢰를 쌓다 보니 옛 어판장을 비우는 데 모두가 승낙했고, 정기적으로 회의도 함께합니다. 어촌계에서 싱싱한 식재료를 공급받고요.
실제 해녀들의 공연 참여는 어떻게 이끌었나요?
해녀들이 공연을 경험하고 박수갈채를 받게 해야겠다 싶어 연극 놀이 교육부터 시작했습니다. 무대에 서는 것이 두렵고 무서운 일이 아님을 알려주기 위해 팬터마임, 미술 놀이 등도 진행했고요. 허구의 인물이 아닌 진짜 해녀들의 인생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했습니다. 현재 7명의 해녀가 참여하고 있어요. 4명은 무대에 오르고, 3명은 음식을 담당합니다.
해녀의 부엌을 오픈하고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어촌계 정기 모임에서 “이제 종달리는 해녀의 부엌이 없으면 안 된다”라고 하더군요. 공연에 참여하는 89세 해녀 할머니는 “내가 죽을 때가 됐나 보다. 이런 호사를 다 누리고. 공연 날만 기다리며 산다”라고 했어요.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뭉클합니다. 또 외부에서 크고 작은 제안이 많이 들어오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진짜 제주도를 위한 일을 하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떠올리곤 해요. 초심과 본질을 잊지 않고, 진정 해녀를 위한 일이 무엇이고, 그에 따른 선택은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해녀의 부엌 오픈 날 외에는 어떤 일을 하나요?
현재 비즈니스를 확장하는 시기라 다양한 업무를 진행해요. 뿔소라를 활용한 가공식품을 개발 중입니다. 작년부터 와디즈 크라우드 펀딩으로 뿔소라를 판매했고, 올 10월에도 진행할 예정이에요. 육지나 해외에서 공연 문의가 잇따르고 있어 외부용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도내 다른 지역에 오픈할 2호점에 대한 논의도 하고요. 마을 특산물을 활용한 콘텐츠를 만들 예정입니다.
해녀의 부엌 장·단기 목표가 궁금합니다.
해녀와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우선이고, 제주 대표 해산물 브랜드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해녀가 직접 채취한 싱싱한 제주 해산물로 신뢰할 수 있는 해산물 브랜드를 만들 겁니다.
기획 및 발행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제작 콘텐츠그룹 재주상회